[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48)

  • 입력 1998년 2월 23일 08시 47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16〉 오빠 곁을 떠나 멀리 카이로까지 가는 것이 저에게는 죽기보다도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분부를 받은 하녀들과 노예들이 저를 꼼짝도 할 수 없도록 감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그다드를 떠나면서 저는 눈물을 흘리며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내 사랑 바그다드, 정다운 이름이여! 못맺을 사랑이 죄가 되어 나는 너를 떠난다만, 내 어찌 잊으리오, 내 사랑 바그다드. 오! 이런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면, 진작에 내 순결을 그분께 바쳤을 것을. 오, 언제일까? 내 다시 그대 품으로 돌아와 꿈같이 달콤한 여자의 행복을 맛볼 날은? 카이로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실은 낙타는 지칠 줄도 모르고 잘도 걸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을 거쳐 마침내 카이로에 도착했습니다. 백부님 댁을 찾아간 노예들은 아버지의 편지와 함께 저를 백부님 손에 맡겼습니다. 백부님은 저를 보고 몹시 귀여워했습니다. 그리고 흔쾌히 저를 맞아들여 아쉬울 것 없이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저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은 사촌오빠였습니다. 사촌오빠는 키가 크고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너그럽고 자상한 청년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학식도 깊고, 장래도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사촌오빠는 저를 데리고 나가 카이로 시내와 나일강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사주기도 하고, 제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사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를 위하여 책을 읽어주는가 하면, 시를 읊어주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를 당나귀 등에 태우고 지자까지 가 피라미드를 구경시켜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 자신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몇 년 후 제가 과년의 처녀가 되면 저와 사촌오빠를 결혼시키기로 아버지와 백부님 사이에 약조가 되어 있다는 것을 사촌 오빠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벌써부터 저를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했고, 보석을 다루듯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제 가슴에는 언제나 바그다드와 바그다드에 살고 있을 오빠에 대한 그리움뿐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바그다드를 떠나오면서 불렀던 노래를 마음 속으로 불러보며 혼자 눈물짓곤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혼자 울고 있는 걸 보면 사촌오빠는 제 어깨를 토닥거려주며 말했습니다. “바그다드의 집이 그립지? 그렇지만 얘야, 너한테는 집이 두 군데나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단다. 바그다드의 집도 너의 집이지만, 카이로의 이 집도 너의 집이란다.” 이렇게 저를 위로해주는 사촌오빠가 그저 고마워 저는 가득히 눈물 고인 눈으로 말없이 쌩긋 웃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제 모습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던지 사촌오빠는 가볍게 제 코를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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