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리인준 거부 옳은가?

  • 입력 1998년 2월 21일 20시 10분


한나라당이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인준을 거부하기로 당론을 정한 것은 과연 잘하는 일인가. 한 정당의 선택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나라당의 결정이 몇가지 이유에서 옳지 않다고 본다. 총리인준 문제에는 차기정부의 순조로운 출범여부가 걸려 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택한 새 대통령이 정부진용을 짜려 하면 일단 도와주는 것이 정도(正道)다. 그것이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의 도리이며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다. 총리내정자가 마음에 안들면 일하는 모양을 보아가며 나중에 해임을 건의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도 정부출범부터 발목잡기로 나간다면 집권경험을 가진 거대야당답지 않게 편협한 태도다. 더구나 지금은 ‘3월 대란설’이 나돌 만큼 경제가 위태롭고 사회도 뒤숭숭하다. 그런 시기에 새 대통령이 첫 총리도 제대로 임명하지 못하고 정국이 혼미에 빠진다면 그 무엇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총리내정자가 누구냐를 떠나 인준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국정공백과 정치불안이 야기되는 불상사는 피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결정은 국회법 정신에도 합치하지 않는다. 인준거부 방법으로 거론되는 국회불참이나 백지투표 전략도 마찬가지다. 국회법은 인사안건과 대통령이 환부한 법률안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처리하도록 특별히 규정했다. 최소한 이들 안건에 대해서는 의원들이 압력에 구속받지 않고 개인의사를 자유롭게 표시하게 하자는 취지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각자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다. 그럼에도 집단행동을 통해 의원들을 옭아매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적인 처사인지 한나라당은 자문(自問)해 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김종필씨가 총리에 취임하면 당(黨)이 와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김씨 때문에 대통령선거에서 졌다는 감정의 앙금도 남아 있을 법하다. 3월10일 전당대회를 의식한 당내 여러 계파의 선명성 경쟁도 작용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이유와 사정이 어떻든 한나라당의 태도는 국정책임을 분담해야 할 원내다수당으로서 떳떳하지 못하다. 한나라당은 총리인준에 당당하게 임하고 찬반은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옳다. 대승적 차원에서 당론을 재조정해 성숙하게 대처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새로운 위상 정립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정치력을 발휘해 한나라당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만일의 경우 총리서리체제로 간다거나 현재의 내각을 유지한다는 일부의 발상은 무책임하다. 정치싸움 등쌀에 자칫 무내각(無內閣)상태가 초래된다면 여야는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