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DJ시계

  • 입력 1998년 2월 21일 20시 10분


▼정치 사회적 변동과 굴곡이 극심할수록 시중엔 사교(邪敎)가 널리 퍼지고 블랙유머가 성행한다. 내일 어찌될지 모르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 사교라면 블랙유머는 그 시대의 민심과 세태를 꾸밈없이 담아낸다. ▼한 때 ‘시리즈’란 이름의 블랙유머가 많이 나돌았다. 그 중 하나가 ‘간 큰 남자’시리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집권한 지 4년째쯤 됐을 때 이 ‘간 큰 남자’시리즈에 새로 추가된 것이 ‘아직도 YS시계를 차고 있는 남자’다. YS시계는 문민정부초기, 특히 사정(司正)이 한창일 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이 시계를 차야만 행세하는 축에 들 수 있었다. 그런 YS시계가 김대통령의 실정에 따른 인기하락과 함께 우스개 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민심이란 그런 것이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DJ시계’가 나돌고 있다. 차기대통령측이 1천개를 만들어 선물로 나눠주고 있는데 측근들과 일부 정치인 고위공직자들 사이에 큰 인기라는 이야기다. 너도 나도 이 시계를 구해 차겠다고 나서는 통에 이번에 만든 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더 주문할 것이란 보도다. 세상이 바뀐 것을 알게 해주는 사례다. ▼기념품으로 갖는 것이야 나쁠 게 없으나 DJ시계의 인기에는 문제도 있다. 권력자의 이름이 박힌 시계를 차고 ‘DJ 사람’이나 권력층인양 뻐기겠다는 인사들도 문제지만 그런 시계를 차야 알아주는 사회분위기라면 그 또한 문제다. 북한 권력층이 김정일이 준 오메가시계를 차고 행세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대개 YS시계를 찼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DJ시계를 구해 찰 것이란 점이다. DJ시계도 언젠가 YS시계처럼 우스개 거리로 전락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차웅<논설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