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정신의 양식」 도산 도미노

  • 입력 1998년 2월 5일 20시 28분


▼국내 출판시장은 한해 2조∼3조원규모라는 게 대체적인 추산이다. 그중 6,7할이 학습참고서이고 교재 전문서적을 제외하면 독자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는 단행본 시장은 1할이 못되는 2천억원 규모의 영세한 시장이다. 이 영세한 단행본 시장에 IMF한파가 몰아쳐 대부분의 유수한 출판사들이 연쇄 부도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소식은 사회 문화 인프라의 한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출판사와 서점을 연결해주는 한 서적도매상의 부도소식이 전해진 2일 이후 출판사들은 피해액을 수소문하며 드디어 문화계도 밑바닥까지 IMF한파가 닥치고 있음에 전율했다. 출판인들이 ‘전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연 2천억원에 불과한 단행본 시장에서 이 도매상의 매출액이 2백50억원이나 돼 랭킹 20위대 이내의 유명 단행본 출판사들이 1억∼3억원 씩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1억원이라면 정가 1만원짜리 단행본 1만권을 팔아야 하는 거액이다. ▼아무리 IMF시대라지만 출판이 붕괴 위기에 몰린 데 대해 출판계는 정부 당국의 몰이해를 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지식산업인 출판업을 단순히 중소기업으로 분류해 금융혜택을 볼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는 것. 출판인들은 출판을 영화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처럼 벤처산업으로 분류, 5백억원 정도의 특별 지원으로 당장 2월의 부도대란을 넘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IMF사태를 빚은 근본 원인중 하나가 우리의 정신자세가 무너진 탓임을 감안하면 정신문화 발전의 토대이자 원동력인 출판산업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정신의 양식을 공급하는 양서출판의 길이 무너져내린다면 설령 IMF난국이 극복된다 한들 사회의 정신건강이 얼마나 튼튼할지 의문이다. 임연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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