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31)

  • 입력 1998년 2월 5일 0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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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99〉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건진 뱀은 놀랍게도 양쪽 등에서부터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날개를 가진 뱀을 저는 그때까지 본 적이 없거니와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커다란 날개를 펼친 뱀은 잠시 고개를 들어 절벽 꼭대기에 서 있는 저를 올려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순간 뱀은 날갯짓을 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이내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그 커다란 뱀이 날갯짓을 하여 하늘로 날아가는 걸 바라보고 있던 저는 너무나 놀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소름끼치는 용으로부터 뱀을 구해준 저는 곧 몰려드는 피로를 이기지 못해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죽음과 같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문득 눈을 떴을 때, 제 발치에는 새까만 옷을 입은 처녀 하나가 단정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제 발을 주물러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새까만 처녀 곁에는 두 마리의 새까만 암캐가 쭈그리고 있었습니다. 낯선 처녀가 제 발을 주무르고 있는 걸 보고 저는 부끄러워 얼른 몸을 일으키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죠?” 그러자 처녀는 더없이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은 벌써 저를 잊어버리셨나보군요. 어떻게 저를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죠? 저는 아까 당신이 구해준 뱀이랍니다. 친절하게도 당신은 저를 살려주셨고, 저의 원수를 죽여주셨습니다.” 낯선 처녀의 그 믿어지지 않는 말에 저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오, 자비로우신 분, 당신은 약하고 착한 자를 가엾게 여기시고, 강하고 악한 자를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그 사악한 용에게 쫓기고 있을 때 당신은 저를 구해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처녀를 향하여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요. 당신이 아까 내가 본 뱀이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러자 처녀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뱀이 아니라 마녀신이랍니다. 그리고 아까 당신이 죽인 그 용은 용이 아니라 사악한 마신이랍니다. 그 마신은 오래 전부터 저를 괴롭히고 저를 죽이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당신 이외엔 아무도 저를 구해주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그 오랜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답니다.” 처녀가 이렇게 말했지만 그때까지도 저는 뭐가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처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를 구해준 당신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길로 저는 곧 당신의 물건을 실은 배로 날아갔습니다. 당신의 물건들을 모두 당신댁까지 날라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부하 마신들을 시켜 당신의 모든 물건들을 하나도 손상하지 않고 당신 집 창고에 다 옮겨놓는 한편, 당신과 당신의 애인을 바다에 던진 두 언니들을 검은 암캐로 만들었습니다. 여기 있는 이 두 마리의 암캐가 바로 당신의 못된 언니들이랍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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