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조계의 「급행료」

  • 입력 1998년 1월 23일 19시 59분


아직도 법원 검찰에 ‘급행료’가 횡행하고 있다니 말문이 막힌다. 보도에 따르면 ‘절차있는 곳에 급행료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법원 검찰의 각종 민원창구가 썩어 있다. 소장(訴狀)접수에서 사건기록 복사, 보석결정서 및 석방지휘서 받아내기, 담당 판검사 배당 등에 이르기까지 길목마다 1만∼2만원에서 20만∼30만원까지의 급행료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액수가 비교적 적고 어느 관공서에나 으레 있는 관행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다. 범죄를 다스리고 법을 다루는 사법기관마저 오랜 악습에 젖어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법원과 검찰은 법집행을 통해 이 사회의 소금역할을 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그런 곳이 오히려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다. 그동안 수사당국이 공직사회의 비리를 단속하면서도 특히 법원의 경우 사법부의 독립이란 관점에서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두 기관은 어쩌다 비리직원이 적발돼도 조용히 사표를 받거나 징계를 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선에서 끝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잘못된 풍토가 결국 비리를 더욱 키우고 뿌리깊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급행료는 법률상 엄연한 뇌물이다. 공무원 사회의 전형적인 범죄인 것이다. 그러나 불감증에 걸린 일부 법원 검찰 직원들은 급행료가 마치 무슨 이권(利權)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는 모양이다. 변호사나 사무장이 급행료를 안낼 경우 절차를 고의로 지연시켜 불이익을 주는 횡포를 부리기 일쑤라고 한다.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급행료는 대부분 일반직원들이 받는다고 하지만 법원 검찰의 공신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판사와 검사가 제아무리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한다고 해도 급행료가 남아있는 한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특히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권위를 인정받지 못할 뿐더러 존재기반 자체를 잃는다. 대한변협은 브로커를 통한 일부 변호사의 사건수임 독식과 높은 수임료 문제를 개혁대상으로 삼아 대책을 마련중이다. 그런 때에 개혁변호사모임이 법조계의 급행료 실태를 고발, 시정을 요구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급행료는 결국 부담이 법률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악습이다. 법원 검찰은 뼈를 깎는 아픔과 노력으로 내부의 급행료 실태와 진상을 스스로 철저히 규명해 발본색원하기 바란다. 두 기관의 비리는 현실적으로 제삼의 기관에 단속을 맡기기가 어려운 만큼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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