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세요]「승부사」방열, 강단서 제2의 승부

  • 입력 1998년 1월 19일 20시 58분


그는 코트에서 ‘여우’로 불렸다. 기상천외한 선수기용, 허를 찌르는 작전, 그리고 한번 상대팀의 약점을 잡으면 죽어도 놓지않는 집요함. 자신은 ‘승부사’임을 강조했지만 농구인들은 오히려 ‘여우’라는 표현을 더 즐겼다. 선수지도 스타일을 놓고 흔히 덕장 지장 맹장으로 분류한다. 이중 그는 지장에 가까웠다.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보다는 해박한 지식과 논리로 선수들을 설득하는 스타일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농구감독이 교수가 됐다고 하면 의아해한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기질’을 아는 사람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인다. 방열(57). 경원대 교수. 생활과학대학 사회체육학과장. 농구를 떠난 지 5년만에 그는 이렇게 변했다. 사회체육개론과 스포츠교육학, 스포츠 미디어 등 1주일에 12시간 강의. 요즘은 대입전형때문에 눈 코 뜰새없이 바쁘다. 방학때지만 일요일을 빼고는 항상 학교에 나간다. 캠퍼스내 L동 434호. 농구코트를 대신한 그의 새 일터가 바로 이곳이다. “학생을 가르치면 속이 썩고 선수를 가르치면 뼈가 썩는다고 해요. 뒤집으면 농구코치보다는 ‘훈장노릇’이 편하다는 얘기겠죠. 실제로 팀을 맡았을 때의 절반정도만 신경쓰면 강의준비, 써클활동 지도 등을 차질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 그는 감독시절 ‘승부’를 즐겼다. 이제 그 짜릿함은 없다. 대신 그는 강단에 서면서 충만함을 즐기고 있다. 코트를 떠난 것이 93년. 경복고→연세대→육군→기업은행을 거치며 6년간 대표선수. 조흥은행 여자팀을 창단시킨데 이어 77년 현대남자팀 창단, 86년 기아팀 창단. 농구대잔치 3연패를 마지막으로 93년 코트를 떠난 그는 교수부임 첫해 학생처장을 맡았다. “강단에 서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현역감독 시절인 86년 모교인 연세대 대학원에 입학한 것도 그때문이었죠.” 그의 대학원 졸업논문 제목은 ‘불교의 교육사상과 체육과의 관련성 연구’. 한국체대에서 박사과정도 수료, 지금 논문을 준비중이다. “농구감독은 언젠가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엔 끝이 없습니다. 현역감독시절 터득한 실제를 이론에 접목하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농구를 완전히 접어버린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 그는 지금까지 4권의 농구책을 썼다. ‘농구만들기 인생만들기’ ‘실전 현대농구’상, 하권 및 ‘농구를 잘 아는 길, 농구를 잘 하는 길’ 등이다. 앞으로도 훈련방법론과 농구전술 등 3,4권은 더 쓰겠다는 것이 그의 욕심. 또 경원대에 남자농구팀도 만들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의 컴백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농구때문에 ‘오늘의 방열’이 있었기에 앞으로는 농구를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싶을 따름이다. 〈최화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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