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그림,아는만큼 보인다」

  • 입력 1998년 1월 3일 08시 01분


▼「그림,아는만큼 보인다」<손철주 지음/효형출판 펴냄> 미술기자 출신이 펴낸 미술이야기책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손철주 지음, 효형출판 발행). 이 책은 거창하지도 않고 현학적이지도 않다. 미술에 얽힌 뒷이야기나 미술작가의 웃지못할, 슬프지만 내면을 맑게 비춰주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엮여있다. 편한 마음으로 글을 따라가다 보면 ‘아, 미술에 이런 재미가 있구나’하고 탄성을 터뜨리게 된다. 그 탄성이 결코 큰 것은 아니지만 감동은 깊고 여운은 길다. 독자를 처음 맞이하는건 반 고흐와 최북이라는 두 천재화가의 광기이야기. 어느날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고흐. 한 세도가가 붓솜씨를 트집잡자 “네까짓 놈의 욕을 들을 바에야…”하면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버린 18세기 조선화가 최북. 고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의 최북은 왜 모르는지. 우리에게도 고집스러운 예술정신이 면면히 흘러오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다. 모조품이야기는 시종 흥미진진하다. 11세기 중국에서 귀신이 곡할 정도로 그림모사에 뛰어났던 당대 최고의 모사꾼 미불. 그는 남의 소장품을 빌려 이를 베낀 뒤 원화가 아닌 모사도를 돌려주는 수법으로 무려 1천여점을 챙긴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소 눈동자에 목동이 비쳐져 있는 그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으니…. 슬픈 모델이야기도 있다. ‘길쭉한 얼굴’이란 불후의 캐릭터를 완성한 모딜리아니의 여성모델이었던 잔은 모딜리아니가 죽자 그 즉시 아파트 창에서 뛰어내렸다. 화가에게 영혼을 다바친 모델의 육신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에. 맑은 영혼, 거침없는 열정, 천재적 광기 등. 한 이야기, 두 이야기 읽어나가다보면 부담스러웠던 미술이 어느새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으리라.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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