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01)

  • 입력 1998년 1월 3일 08시 01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69〉 차가운 땅 위에 뉘어 있는 아들을 보자 노인은 땅에 몸을 던지고 머리에 흙을 끼얹고 얼굴을 두드리고 수염을 쥐어뜯었습니다. 노인은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마침내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주 오랜 뒤에서야 노인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기는 했습니다만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넋이 빠진 얼굴로 죽은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고만 있던 노인은 마침내 아들 곁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노인의 넋은 기어이 육체에서 떠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가엾은 노인마저 죽어버리자 노예들은 소리 높여 울부짖었습니다. “아, 가엾어라, 나리마님!” 이렇게 소리치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머리에 흙을 뿌리고, 옷을 찢었습니다. 더없이 구슬피 울어대던 그 충직된 노예들은 이윽고 죽은 아들과 그 가엾은 아버지의 시체를 배로 떠메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배로 옮기고는 닻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시체를 실은 그 슬픔의 배는 안개 속을 뚫고 사라져갔습니다. 그때까지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이런 광경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머리도 세기 전에 마음은 완전히 늙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나는 괴롭고 허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온갖 기쁨 사라지고 내 가슴에는 이제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네. 사랑하는 분의 시체를 실은 배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배 떠난 바닷가에 나는 홀로 서 있네. 젊은이의 시체를 실은 배가 사라진 쪽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고 있던 나는 이윽고 덮개를 열고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그 지하실에는 무엇 하나 죽은 젊은이를 생각나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젊은이의 유품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네 흔적 바라보며 고통스런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불 꺼진 화덕을 바라보며 네 모습 그리워 눈물 흘린다. 네가 떠난 자리에 홀로 서서 나는 이별의 운명을 정하신 신께 애원한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 따뜻한 체온 함께 느끼게 되기를. 그후로 나는 매일같이 섬을 배회하였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내 머리 속에는 그 아름다운 젊은이의 미소와 그와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특이한 자연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섬의 서쪽 바다는 원래부터 물이 얕은데다가 그믐이 지나면서부터 차차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달 보름께가 되자 바닥을 드러낼 만큼 물이 빠져 바다 사이로 길게 길이 나타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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