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뒤로 가는 국민연금

  • 입력 1997년 12월 29일 20시 20분


국민연금제도 개편안이 마련되었다.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국민연금제도 개선기획단이 1년반의 작업끝에 마련한 국민연금제도 개편안은 그러나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가입자의 적립보험료는 올리면서 노후에 받는 연금액수는 크게 줄이고 그나마 받는 시기도 지금의 60세에서 65세 이후로 늦추는 내용이다.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국민연금제도의 기본취지가 무색해지는 퇴행성 제도개편이다. 개편안에 담긴 내용 중 가장 큰 문제점은 연금의 대폭 감액부분이다. 경과규정이 있기는 하나 제도개선 이후 평균소득계층의 연금액이 70%에서 40%로 반 가까이 줄게 되어 있다. 독일 60%, 일본 69%, 스웨덴의 55.8%보다 낮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연금지급개시전 소득의 40%로 생계가 가능할지 문제다. 연금제도가 아예 없어지지 않는다는 데서 위안을 찾아야 할 정도의 뒷걸음이다. 연금제도를 이렇게라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지금 제도를 바꾸지 않을 경우 노령연금이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2008년부터 기금이 줄어들기 시작해 2025년에는 그해 수입액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지고 2033년에 연금기금이 바닥난다는 것이 현시점의 추계다. 따라서 연금제도를 존속시키려면 지금이라도 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연금 재정이 이렇게 파산지경에 이른 근본 원인은 88년 연금제도를 시행할 때 제도도입 자체에 정치적 의미를 크게 둔 나머지 계산을 너무 안이하게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킬 수 없는 장밋빛 계획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제도의 혜택범위를 온 국민으로 확대한다는 일정에 따라 내년 7월부터는 기존 가입자보다 수가 많은 도시지역 자영자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들이 20년 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타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연금지급액은 폭발적으로 늘게 된다. 그동안 정부가 연금기금을 싼 이자로 당겨 씀으로써 기금증식이 부진했던 것도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연금액을 줄이고 지급시기를 늦추거나 보험료를 크게 올리는 방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인데 보험료를 단번에 대폭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기획단의 개선안을 바탕으로 하되 제도개편이 다시 없도록 재정추계를 정확하게 하고 기금을 쌈짓돈처럼 정부가 마음대로 쓰는 관행부터 막을 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연금제도의 소득재분배기능을 위해서도 중앙정부의 재정지원방안을 추가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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