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87)

  • 입력 1997년 12월 18일 08시 58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55〉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나는 그동안 나에게 닥친 갖가지 재난들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인도로 가는 길에 포악한 마적단을 만나 모든 것을 잃었던 일, 아버지의 적국에 발을 들였다가 그 인정 많은 재봉사를 만나 나무꾼이 되었던 일,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하 궁전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일, 그 일로 인하여 마신의 노여움을 사 여자는 처참하게 죽어야 했고 나는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보기에도 처참한 원숭이가 되었던 일, 원숭이의 몸으로 낯선 도시에까지 흘러들어갔다가 그 아름다운 공주의 희생으로 다시 인간이 되어 떠나게 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면서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습니다. 그뒤 나는 여러 나라와 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며 여행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바그다드로 가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평화의 집 바그다드로 가보기로 마음을 정하게 되자 나는 갑자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가면 충성스런 백성들의 군주이신 교주님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뵐 수만 있다면 그동안 내가 겪은 고난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바람을 헤치고 제가 마침내 바그다드에 도착한 것은 오늘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생전 처음인데다가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갈 바를 모르고 서 있는 이 첫번째 스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분 역시 한쪽 눈이 없는 애꾸눈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동병상련에서 이 형제분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보니 이 스님 역시 저나 마찬가지로 이 도시에 처음 오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 세번째 스님이 저희들에게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인연입니까? 세번째 스님 역시 저희들처럼 애꾸눈인데다가 외국에서 갓 도착한 나그네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세사람은 동행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세사람은 서로의 처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야기가 저의 신세 이야기, 즉 제가 애꾸눈이가 되고 수염과 머리를 깎게 된 사연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난 두번째 탁발승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그 기구한 인생역정에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은 교주였습니다. 그는 쟈아파르를 향해 이렇게 속삭였으니까요. 『정말 기구한 이야기야! 알라께 맹세코, 나는 저 탁발승의 이야기보다 더 신기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 교주가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 때 여주인은 두번째 탁발승에게 말했습니다. 『좋아요. 당신도 용서해드릴 테니 돌아가도 좋아요』 그러나 두번째 탁발승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결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때 세번째 탁발승이 여주인 앞으로 나왔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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