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86)

  • 입력 1997년 12월 17일 08시 16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54〉 우리는 공주를 부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손짓으로 가만 내버려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주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것도 운명이겠지만, 저는 그만 마신의 목숨이 든 석류 씨앗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끝내는 그 싸움에 이겨 그놈을 태워 죽이기는 했지만 저 자신도 이제 살아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 자비로우신 알라시여, 저 대신에 저의 아버님께 보상을 내리소서!』 이렇게 말한 공주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알라 이외에 신 없고, 모하메드는 신의 사도임을 증명한다는 신앙 고백을 끝으로 한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걸 보자 왕은 타다 남은 수염을 쥐어뜯고, 얼굴을 때리고, 옷을 찢으며 비통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나 또한 나 때문에 죽은 그 아름다운 공주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그리고 딸을 잃은 왕의 처지가 가슴 아파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시종들과 고관들이 들어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왕은 사악한 마신 때문에 공주가 참변을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동은 무거운 슬픔에 잠겼고 시녀들과 노예계집들은 통곡하기 시작했으니 그 울음 소리는 온 나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울음 소리는 칠 일 동안 그칠줄을 몰랐습니다. 왕은 공주의 재 위에다 둥근 지붕의 사당을 세우게 하고 그 속에다 촛불과 등잔을 켜 놓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신의 재는 바람에 날려보내 하루 바삐 알라의 저주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후 왕은 꼬박 한 달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신하들은 걱정으로 병상을 지켰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다행히도 왕은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화상은 거의 아물고 수염도 다시 났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었던 지난 한 달 동안 왕은 무엇인가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지 알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자비로우신 알라께 기도드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나를 불러 말했습니다. 『오 젊은이, 그대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운이 좋아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다. 이 세상의 온갖 재난과 무상한 폭풍이 남의 일로만 여겨졌었다. 그런데 그대를 만나고 내 인생은 달라지고 말았다.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을 잃었고, 충직한 내시를 잃었고, 그리고 나는 깊은 화상과 함께 치아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대를 원망해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만 한 가지, 이제 이 도시를 떠나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그대 얼굴을 대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때 나는 그대를 살려두지 않을 것일세』 정말이지 나는 유구무언이었습니다. 나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왕 앞을 물러났습니다. 그것이 왕과의 작별이었습니다. 그 도시를 떠나기 전에 나는 머리를 깎고 수염과 눈썹을 밀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재를 끼얹고 탁발승이 입는 검은 옷을 걸쳤습니다. 나 때문에 화를 입은 사람들에게 마음 속 깊이 사죄하는 뜻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정처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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