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조훈자/남편의 눈물

  • 입력 1997년 12월 13일 08시 15분


밤이 깊어가는데도 남편은 오지 않고 시계의 초침소리만 초조하게 울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새벽1시쯤 돼서야 흘림자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들어왔다. 털썩 자리에 누워버린 그이는 습관처럼 푸념을 내뱉기 시작했다. 『사십평생을 앞만 보고 살아왔어. 남자로 태어나서 돈을 추구하느냐 일을 추구하느냐를 놓고 선택하라면 난 자신있게 일이라고 말했어. 진짜로 일을 즐기면서 살아왔지. 회사가 마치 내것인양 착각할 때도 있었지. 돌아보면 아무런 후회도 없어』 하지만 이어지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내 가슴은 아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어. 20명의 직원들 가운데 6명을 그만두라고 해야 하는데 지금 그 사람들 그만두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 사람들 참 열심히 일했어. 요령도 부릴 줄 모르고 정말 성실하게들 살아왔지. 그런데 가야 할 곳도 없는 지금 그 사람들을 어디로 가라고 해. 세상에 이렇게 가슴이 쓰리고 아플 수가 있겠어』 남편은 울고 있었다. 남편의 눈물을 본 것은 시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이었다. 옆에 누워 있으면서도 위로해줄 말조차 없는 답답함이란…. 그저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다짐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20년이 넘은 반양옥집에서 겨울이면 창마다 비닐을 둘러쳐서 난방비를 아끼며 월급의 반은 무조건 저축해왔다. 아이들에게도 아직껏 필라니 리복이니 하는 외제를 사서 입혀본 적이 한번도 없고 남들 다하는 머리염색 한번 안해보고 살아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출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 많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왜 그렇게 사느냐는 이웃의 비아냥거림을 웃음으로 넘겨버리고 살아왔건만 때로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남편의 아픈 가슴과는 견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다. 어떡하다가 이 지경까지 와버렸단 말인가. 대통령과 정부는 도대체 뭘 했는가. 그렇다고 우리들 모두는 책임 밖에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이제까지의 생활은 모두 떨쳐버리자.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감원설을 말해야 하는 괴로움도, 갈 곳이 없으면서도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설움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훈자(대구 북구 산격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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