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승재/『우린 어떻게 살라고…』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사는 주부 나모씨(30)는 손등을 내려다 보는 게 버릇이다. 창백한 뼈마디, 전기료를 아끼려고 세탁기를 안돌리고 마당에서 고무장갑을 낀 채 수돗물로 빨래를 하고나면 손등에 분화구처럼 솟아오르는 벌건 수포. 하지만 나씨는 행복했다. 내년 5월이면 꿈에 그리던 「내 집」을 갖게 되니까. 결혼 5년째. 종가집 맏며느리로 들어와 시부모 시할머니에 남편과 아들 딸을 합쳐 여섯식구를 뒷바라지해 온 나씨. 남편(33·건축회사 근무)이 가져다 주는 1백만원 남짓한 월급도 감사하다. 연말 보너스는 취소됐지만 요즘 세상에 봉급 제대로 받는 것만도 어딘가. 지난 7월 모 주택할부금융사에서 2천만원을 대출받았다. 5년 만기에 12.8% 이자율. 마지막 아파트중도금을 이것으로 치렀다. 매달 46만원씩 5년만 견디면 경기 파주시의 30평 아파트는 나씨의 품에 안긴다. 그러던 지난 9일, 누런 「안내서」하나가 할부금융사로부터 배달됐다. 「고객여러분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최근 경제위기로 실세 금리가 폭등해 할부금융업계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죄송하지만 자금 여력이 있는 분들께는 중도상환을 권고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20%이상으로 대출이자율을 높일 수밖에 없음을 알립니다」. 경악한 나씨는 수화기를 들었다. 『장기 확정금리로 계약해 놓고 어떻게 이자를 두배나 올릴 수 있는 거죠. 우리 서민들 1년에 2백만원 더 내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도 따지고 보면 남의 돈으로 장사, 우리 월급도 못받을 지경입니다. 정말 죄송…』 금융사 직원의 울먹임에 더이상 항의도 못하고 수화기를 떨군 나씨의 시야에 찐 감자를 으깨 문 아들(4)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들어왔다. 〈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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