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태풍」인가. 크고 작은 기업이 부도로 쓰러지고주가가 폭락하면서친척이나친구에게 빚보증을 섰다가보금자리를 잃고 찬바람을 맞으며 전세나 사글세방을 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철석같이 믿었던 사위나 동서에게 돈을 떼이고 집안이 풍비박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장년층 이상은 젊었을 때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면서 처가와는 별로 왕래조차 없었지만 20대와 30대 중에는 본가보다 처가를 더 가까이 여기는 경우가 많다. 처가와 동서간의 돈 거래도 쉽게 여긴다. 따라서 이들이 파산하면 본가쪽보다는 오히려 처가쪽이 우르르 무너지는 것.
또 장인 장모가 사위를 「남」이지만 피붙이처럼 대할 수밖에 없는 한국적 정서도 「사위로 인한 파산」을 빚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경기 분당 수내동에 사는 강모씨(63)는 지난해 받은 퇴직금 2억여원을 사위(35)에게 사업자금으로 몽땅 빌려줬고 집까지 담보로 해 줬다. 사위는 며칠 전 부도를 내고 자취를 감춰 버렸다. 강씨는 『사위의 사업하는 꼴이 못 미덥기는 했지만 딸과 함께 애원하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면서 『만약 아들이 사업을 한다고 했으면 성격과 맞는지 장래성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돈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하고 있다.
돈의 용도를 결정하는 「권한」이 남편으로부터 아내에게로 옮아가고 있는 것도 「사위나 동서로 인한 파산」과 관련이 있다. 아내가 돈 문제에 관해 시가보다는 친정이나 언니 동생과 자주 의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장모씨(37·서울 성내동)는 최근 손아래 동서의 부도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이 마련해 살고 있는 24평형 아파트의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았다가 그만 등기소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1억2천만원에 담보돼 있었던 것. 그는 『집사람이 살림을 맡고 있어 담보니 보증이니 하는 것도 집사람 하는 대로 맡겼다가 쪽박을 차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화여대 함인희교수(사회학)는 『친족관계가 부계 중심에서 부부 양가를 모두 소중히 여기는 경향으로 바뀌면서 본가보다 비교적 쉽게 대할 수 있는 처가쪽과 돈거래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가나 동서의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신세대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족의 돈은 곧 자신의 돈이라는 사고방식 속에 살아온 이들이 「새로운 가족」인 처가의 재산도 쉽게 생각하고 끌어 쓰다가 결국 피해를 준다는 것.
〈박중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