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66)

  • 입력 1997년 11월 27일 07시 54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34〉 나는 마적단에 신하 한 사람을 급파하여 이런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인도 대왕의 사신들로서 대왕에게 바칠 선물을 가지고 가는 중이다. 그러니 우리를 해치지 말라』 이 말을 들은 마적단 두목은 우리쪽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도 왕의 백성도 아니고 그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소리치고 난 마적단 두목은 칼을 뽑아 내가 파견한 신하를 단칼에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일행을 향해 돌진하였습니다. 우리는 놈들에 비해 그 수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제대로 대항도 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습니다. 놈들은 우리 일행을 모조리 베어죽인 뒤 우리의 짐짝을 풀어헤쳤습니다. 짐짝에서는 돈과 선물이 쏟아져 나왔고 놈들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이리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한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놈들의 돌격을 받아 상당히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만 다행히도 목숨은 붙어 있었고 정신이 말짱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죽은 척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놈들은 노획물들을 실은 낙타를 끌고 사라졌습니다. 놈들이 사라진 뒤에서야 나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나는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시체를 땅에다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랄 것도 없이 혼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향없이 걷다보니 어느 산꼭대기에 당도하였습니다. 나는 그날밤을 굴 속에서 지새웠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아버지의 충성된 신하들이 그토록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위험한 여행을 떠났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후회해봐도 이미 때늦은 일이었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며칠을 걷다보니 어느덧 나는 아름답고 번화한 도시에 이르렀습니다. 때는 마침 백화가 만발하는 봄이라 꽃은 봉오리를 벌리고, 얼었던 개울물은 졸졸 맑은 소리로 흘렀으며, 새는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며 짝을 찾고 있었습니다. 옛 시인은 어느 도시를 두고 이렇게 노래한 바 있는데 흡사 그와 같은 도시였습니다. 근심의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도시 이 땅에 충만한 것은 평화와 행복. 자연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아이들은 즐겁기만 하여라.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지저귀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여 내일을 설계한다. 나는 긴 여행에 지쳐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지고 오랜 굶주림으로 낯빛은 누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적단에 입은 상처는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칠대로 지쳐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도시를 보자 나는 기운이 솟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는 가게 앞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재봉사 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 인사했습니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