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58)

  • 입력 1997년 11월 18일 08시 00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26〉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회한, 그리고 풀릴 길 없는 의문을 안은 채 나는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도성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무리의 무뢰한들이 나에게로 달려들어 뒷결박을 지워버린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무뢰한들이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신하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나 자신의 노예들도 몇몇 섞여 있었습니다. 『이 무슨 무엄한 짓들인가? 내가 이 나라의 왕자란 것도 잊었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 소리쳤지만 놈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습니다. 놈들은 나 뿐만 아니라 나의 호위병들마저 모두 결박해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쳐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감히 나와 나의 호위병들을 이렇게 대하다니,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했단 말이냐?』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서야 그들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실은 저희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랍니다. 가히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대체 무슨 소리냐? 좀더 자세히 말해다오』 『실은 당신이 이 나라를 떠나 있는 사이에 당신 아버님께서는 크나큰 재난을 당하셨습니다.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니까요. 반란의 주동자는 애꾸눈이 대신인데, 그는 당신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우리들은 그분의 명령에 따라 당신을 체포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버님이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자 일행은 나를 끌고 왕위를 찬탈해간 대신 앞으로 갔습니다. 나는 슬픔과 분노로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 전부터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가 나에게 한을 품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여러 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쏘아보내는 쇠뇌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궁의 옥상 위에 서 있으려니까 새 한 마리가 대신의 집 꼭대기에 날아가 앉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걸 보자 나는 들고 있던 쇠뇌를 쏘았습니다. 그러나 겨냥이 빗나가 공교롭게도 화살은 열려져 있던 대신의 집 창문 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게 그런 것이겠지만, 빗나간 화살은 하필이면 그때 마침 집 안에 있던 대신의 왼쪽 눈을 정통으로 맞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옛시인이 노래했던 그대로 말입니다. 강물이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듯이 우리는 저마다 운명의 길을 걷는다. 오, 누구라서 운명을 피할 수 있으리요? 운명의 화살은 빗나가는 일이 없는 법. 아무렇게나 쏜 화살도 심장에 날아와 박힌다. 한쪽 눈을 잃어버렸지만 당시에 대신은 감히 한마디 불평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가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일로 해서 그가 품은 원한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