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신치영/어른 싸움에 멍드는 「童心」

  • 입력 1997년 11월 4일 19시 53분


4일 오전 서울 K초등학교는 더이상 어린이들의 배움터가 아니었다. 이날 각 교실에는 절반도 되지 않는 학생들만이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거나 아예 선생님 없이 자습을 하는 반도 눈에 띄었다. 사립인 이 학교는 지난달 23일 4학년 담임교사 황모씨(37)의 투신자살로 교장퇴진을 요구하는 교사들과 재단간의 갈등이 증폭돼왔다. 교사들은 『이사장의 남편인 교장이 파행적으로 학교를 운영, 교사의 죽음까지 불러왔다』며 지난달 29일부터 3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교사들에 동조하는 학부모들까지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교장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등교거부에 들어간다」고 결의하고 이날부터 아이들의 등교길을 막은 것. 결국 이날 재학생 8백91명 가운데 4백73명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전날 비상대책위의 통지문을 받고서도 「설마」하면서 오전 일찍부터 학교에 나온 50여명의 학부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된다』며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퇴진요구를 받고 있는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교사와 학부모가 전부 모여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자』며 6일 오후 비상회의에 나와 줄 것을 요청했다. 교사들은 비상회의에 참석키로 결정했지만 「이제 타협점을 찾기는 불가능하다」는 입장. 학부모 비상대책위 1학년 대표 안중원(安重源·39·회사원)씨도 『교장퇴진과 교사 및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을 경우 등교거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간의 의견이 갈리고 학교와 교사가 편을 갈라 대립하는 사이 아이들의 가슴은 멍들어만 갔다. 교실 한쪽에 혼자 앉아있던 한 5학년 여학생은 『친구들이 빨리 학교에 다시 나와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