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재치… 풍자… 웃으며 읽는 「판소리동화」

  • 입력 1997년 10월 28일 08시 16분


▼「재미있는 판소리동화」<이청준 지음 파랑새 펴냄> 『우리 남원은 사판이다. 어이하여 사판인고. 우리 사또는 농판이오. 상청 관수 되판이오. 육방관속은 먹을 판 났으니 우리 백성은 죽을 판이로다. 얼럴럴 상사디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절개 굳은 춘향이와 못된 변사또, 심술사나운 놀부와 효녀 심청이야기.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옛날얘기로만 여겼지만 알고 보면 덩달이 만득이 시리즈 저리 가랄 웃음보따리가 가득하다. 게다가 웃음 끝에는 사람의 오묘한 됨됨이와 세상살이의 깊은 이치가 남는다. 그뿐인가. 노래로 들려주던 이야기라 우리 말 특유의 묘미가 살아난다. 「축제」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중진작가 이청준씨(58)가 「판소리 동화」란 새로운 장르를 독자들에게 펼쳐보인다. 열림원에서 나왔던 「놀부는 선생이 많다」 「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에다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춘향이를 누가 말려」 「옹고집이 기가 막혀」를 보태 「재미있는 판소리동화」(파랑새)5권을 완간한 것. 「병신과 머저리」 「소문의 벽」 「당신들의 천국」 등의 작품으로 그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그의 이런 변신이 조금은 낯설게 보일는지 모른다. 『판소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보태지고 다듬어져온 일종의 적층(積層)문학입니다. 우리 역사와 풍속 전설 종교 예술 윤리 산업 지리가 모두 녹아들어 있어 예전에는 국민종합교과서 노릇을 해왔는데 요즘에 와서 잘못 알려진 것 같아요』 그는 어려서부터 판소리와 제대로 만나 삶의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동화형식을 빌렸다고 말한다. 옹고집부자의 심술 등 원작에는 없는 세태풍자가 곳곳에서 번득여 어른들에게는 우화소설로도 읽혀진다. 『나이가 들수록 소설쓰기가 고통스러워지더군요. 뭔가 쓸 만하다 싶으면 예전에 다 쓴 것이고 글쓰는 힘도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고전을 현대에 맞게 새롭게 가공해서 재생산하는 작업으로 옮아가게 됐는가 봅니다』 사실 그의 동화쓰기는 「사상계」를 통해 「퇴원」으로 등단한 60년대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미 「별을 기르는 아이」란 동화집을 냈고 95년에도 타계한 어머니를 회상하며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란 동화를 펴냈다. 한 평론가의 말대로 고향과 도시로 대표되는 두 세계를 오가는 떠남과 되돌아옴의 반복이 그의 소설세계의 특징이라면 그의 동화쓰기는 고향,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연륜이 쌓일수록 회귀본능도 강렬해지는가. 〈김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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