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김경달/취업시즌…비틀대는 상아탑

  • 입력 1997년 10월 27일 20시 13분


27일 오후 서울대 사회대 라운지. 서울의 모대학과 지방의 모대학에서 교양과목을 강의하는 강사 S씨(31)와 C씨(35)가 마주앉아 있었다. 서울대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발랄한 대학생들 틈에 끼여 커피를 마시며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S씨가 지난주 중간고사를 치르면서 겪은 경험담을 꺼내면서 두 사람의 표정은 다소 어두워졌다. 『지난 주 중간고사를 치르는데 말끔한 정장차림의 한 남학생이 눈길을 끌더라고요. 답안지는 거의 비워둔 채 계속 끙끙거리더니 끝내 모든 학생이 나간 뒤에야 답안지를 건네더군요』 입맛을 다시며 목소리를 높인 S씨. 『그런데 낌새가 이상했어요. 답안지 아래에 흰 봉투가 있었어요. 황당하더라고요』 그는 그 남학생이 『최근에 취직을 했는데 시험과 수업을 제대로 받기 힘들다며 학점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더라』고 설명했다. 한참 화를 내다가 그저 돌아섰다는 S씨의 말에 C씨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얼마전 한 학생이 찾아와 취직을 했다면서 수업을 자주 들어오기 힘들다고 하더라고. 「모두가 취업난에 허덕이는 데 취직했다니 잘 됐네」하고 축하해줬지. 그런데 말야. 노래방에 취직했다는 거야.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더니 친척이 경영하는 곳인데 일단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야』 S씨가 덧붙인 이야기는 이런 문제가 두 사람만의 고민이 아님을 엿보게 했다. 『며칠전에 몇몇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학생들의 취직을 어느선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의논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유소에 나가 일하고 있다면서 수업을 면제해 달라고 부탁한 학생의 경우도 거론됐어요. 취업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체면과 원칙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경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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