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도성/YS가 뿌린 씨앗

  • 입력 1997년 10월 27일 19시 40분


요즘 신한국당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추악한 몰골들을 보면서 뇌리의 한 구석을 떠나지 않는 상념은 「아, YS(김영삼·金泳三대통령)가 뿌린 씨를 이제 거두고 있구나」하는 생각이다. 지난 90년1월, 3당합당으로 한국 정당정치의 틀이 뿌리째 뒤집혀버린 이래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던 그 숱한 정치적 훼절배신보복 복수 권모술수의 「절정(絶頂)」을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 3당합당의 추한 열매 지금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총재가 5공의 후예들과 함께 「혁명과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바로 7년9개월여 전 YS가 5공의 주역들과 손을 잡으며 「구국의 결단」이라고 강변하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YS는 『이런 결단이 없었으면 쿠데타가 일어났을 것』이라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지만 그건 자신의 훼절에 대한 변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임 당총재 밟고 넘어가기」도 따지고 보면 노태우(盧泰愚)씨나 YS나 모두 대선전략으로 써먹던 수법이다. 당시 전두환(全斗煥)씨는 『나를 밟아야 이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용인했었다. 노태우씨의 경우 대선을 두달 앞두고 민자당을 탈당하는 등 외관상 몇가지 곡절을 드러냈으나 근원적으로는 전―노 관계와 마찬가지로 대선 승리를 위한 「쇼」의 일환이었음은 당시 사정에 밝은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번의 경우 YS가 자신을 밟고 넘어가는 대선전략을 용인하지 않았고, 지지율 하락으로 막판 벼랑 끝에 몰린 이회창총재도 진검(眞劒)을 빼드는 등 「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그러나 말그대로 「막가고 있는」 이런 싸움의 연원도 거슬러 올라가면 정당의 정체성뿐 아니라 개개인 구성원의 정체성까지도 무너뜨린 3당합당이라는 「결단의 씨앗」이 남긴 「일그러진 열매」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선과(善果)」든 「악과(惡果)」든 뿌린 자가 거두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영향이 온 나라 온 국민에게 미친다는 점이다. 오늘 신한국당내에서 벌어지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이판사판식 싸움이 민생에 얼마큼 피해를 주는지 중언부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이야 무슨 얘기를 한들 그들 귀에 들릴 리도 없고 궁극적 심판은 국민들 몫으로 남겨놓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YS의 경우는 다르다. 이제 남은 임기 4개월동안 허심탄회하고 정성을 다한 국정챙기기로 자신이 만들어 남긴 신한국당이 국민에게 안겨주는 짐을 덜어주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행여 「승부사」 「승리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로서의 마지막 기질을 발휘해 이번 싸움판에서도 마지막으로 이겨보겠다는 미혹(迷惑)에 빠진다면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불행한 일일 뿐이다. ▼ 남은 넉달 허심탄회하게 대선후보들뿐 아니라 국정을 챙기는 틈을 내어 「마음 비우기」에 도움을 줄 만한 각계 원로들과 친지들, 그리고 임기동안 자신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를 안게 된 사람들과도 말끔히 마음을 푸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어느 정치인 못지 않게 박수를 좋아하는 YS에게 한번 되돌아 음미해보기를 권하고 싶은 대목은 92년 대선 직후 정계은퇴 선언을 한 DJ(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에게 쏟아졌던 그 엄청난 박수소리다. 이동성(정치부차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