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27)

  • 입력 1997년 10월 16일 07시 43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53〉 『오, 내 마음의 아내여, 제발 마음을 굳게 먹어요. 당신은 죽지 않아요』 마루프는 왕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왕비는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만났던 것은 알라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정말 행복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니 이젠 아무 여한이 없어요. 아들 부탁을 굳이 하진 않겠어요. 당신이 알아서 잘 키울테니까요. 다만 한가지 당신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반지를 소중히 간직하라는 것 뿐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당신 자신은 물론 아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난 왕비는 반지를 뽑아 남편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왕비는 세상을 떠났다. 그 착하고 아름다운 두냐 공주는 이렇게 하여 자비로운 알라의 손에 맡겨졌던 것이다. 왕비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나라 안에 퍼져나가면서 백성들은 모두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국장이 끝나자 마루프는 애써 슬픔을 감추고 다시 국사에 전념했다. 낡은 교량을 보수하게 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병원을 짓게 하고, 과부나 고아들을 위하여 생활비를 지급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신하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어두워져가고 있는 거실에 마루프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그는 죽은 왕비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서야 그는 침실로 들어갔다. 왕이 침실로 들자 계집 노예들은 왕의 옷을 벗긴 다음 잠옷으로 갈아 입혀주었다. 이윽고 왕이 잠자리에 들자 계집노예들은 왕의 발을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왕은 잠들었고, 왕이 잠든 것을 보자 계집노예들은 조용히 물러났다. 계집노예들이 물러난 뒤에도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선잠에 빠져들었던 마루프는 이불 속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자신의 몸에 닿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는 침상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대체 너는 누구냐? 사람이냐 짐승이냐?』 이렇게 소리치며 이불을 들춰보니, 자기 옆에는 소름이 끼칠만큼 못생긴 여자 하나가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너는 대체 누구냐?』 다시 한번 마루프는 소리쳤다. 그제서야 여자가 잠에서 깨어나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나는 당신 마누라 파티마라오』 이 말을 들은 마루프는 상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추한 얼굴이며, 커다란 송곳니며, 뒤룩뒤룩 살이 찐 몸이며, 틀림없이 그 옛날의 자기 마누라, 파티마였다. 그걸 보자 마루프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임자는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어? 누가 이 나라에까지 데려왔어?』 그러자 여자는 되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지금 대체 어느 나라에 있는 거요?』 『이후티얀 알 후탄이라는 나라야. 그런데 임자는 언제 카이로를 떠나왔어?』 『조금 전에요』 『그럴 리가? 카이로에서 여기까지 오자면 적어도 일 년은 걸리는 거린데』 이렇게 말한 마루프는 자신이 지금 혹시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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