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23)

  • 입력 1997년 10월 11일 19시 59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49〉 대신의 전갈을 받은 두냐 공주는 남편과 아버지의 불행을 슬퍼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더없이 슬피 울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사람을 시켜 대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도록 하였다. 『넉 달 열흘간이라는 과부의 기한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 다음 법도에 따라 혼인계약서를 작성하고 신방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공주의 전갈을 받은 대신은 그러나 다시 사자를 보내어 이런 말을 전하도록 하였다. 『과부의 기한이니 뭐니 하는 법도 따위는 나하고 상관이 없다. 나는 날짜를 미루고 싶지 않다. 계약서 따위도 필요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밤에는 그대에게 가겠다』 대신의 전갈을 받은 두냐 공주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런 끝에 그녀는 문득 무슨 생각을 했던지 다시 사자를 보내어 이런 말을 전하게 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서 오세요』 이 대답을 듣자 대신은 너무나 기뻐 가슴의 번뇌도 깨끗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오랜 세월을 두고 그는 공주를 향한 연정을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은 장로며 중신들을 불러오게 하고, 진수성찬을 준비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는 했지만 그 다소 공포에 찬 분위기 때문에 아무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대신은 소리쳤다. 『먹어라. 실은 오늘밤 나는 두냐 공주와 신방을 차릴 작정이다. 그러니까 이 자리가 나의 혼인잔치 자리다. 먹어다오』 그러자 회교도 장로 한 사람이 말했다. 『두냐 공주와 신방을 차린다고요? 그렇지만 두냐 공주는 현재 과부입니다. 과부의 기한이 끝나고, 정식으로 혼인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공주님 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국가의 기강을 위해서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자 대신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과부의 기한이고 뭐고 그런 케케묵은 법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난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겠다』 이렇게 되자 장로는 목숨이 두려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앞을 물러나온 뒤에서야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저 자는 이단사교의 무리와 다를 바 없어. 신앙도 없거니와 신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아주 무엄한 자야. 이제 우리 장래가 어떻게 될지 두렵네』 해가 지기가 무섭게 대신은 공주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공주는 더없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패물로 몸을 꾸미고 있었다. 공주는 대신을 보자 방긋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저는 지루할 만큼 당신을 기다렸답니다. 하지만 남편과 아버지를 아예 깨끗이 죽여버리셨다면 제 마음은 더욱 놓였을 거예요』 공주의 이 뜻밖의 말에 대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일은 그것들을 죽여버려야겠어』 공주는 그러한 대신을 곁에 앉힌 다음 애무를 하고 희롱을 하는 등 상대가 넋을 잃을 만큼 온갖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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