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종완/식품 검역망 더 촘촘히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4분


미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인체에는 최소한 1천조(조)의 각종 균이 살고 있다. 놀랄 일이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매일 아침 마시는 50㏄의 요구르트 한 병에도 5백억의 유산균이 들어 있으니까. 문제는 유산균처럼 인체의 소화기능을 돕는 이로운 균이냐, 아니면 최근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O―157 또는 O―26이나 리스테리아같은 병원성 세균이냐에 있다. ▼ 「세균의 세계화」 ▼ 지난달 26일 농림부 동물검역소가 미국 네브래스카산(産) 수입 쇠고기에서 O―157:H7이 검출된 사실을 발표한 이후 「식품 오염 공포증」이 미국 드라이어스사의 아이스크림에까지 도미노 현상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처음 보는 병원성 세균이 어느날 갑자기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처럼 국내에 침투한 것같은 인상을 주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에 국산 쇠고기의 간에서, 이에 앞서 94년에는 한우의 배설물에서 O―157균이 각각 발견됐으며 O―26균도 87년 국내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한 어린이에게서 검출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O―157균이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아직까지 이 균에 감염된 환자가 발생했다는 공식보고는 없다. 이에 대해 고기를 바싹 익혀 먹는 한국인의 식생활 습관 덕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한국인은 맵고 짜게 먹어 위장이 튼튼해졌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나돈다. O―157사건은 수입개방으로 각국의 농산물 및 식품이 홍수처럼 국내시장에 몰려와 「세균의 세계화」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오염 파동은 정부 당국의 정밀검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모든 식품에 대한 철저한 안전검사 체계가 더욱 절실해졌다. 국민이 식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느냐는 한 나라의 선진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각종 수입 농산물이나 식품에 묻어 침투하는 외래 세균의 침입에 대비키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통상마찰보다 국민보건을 우선시하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농림부나 보건복지부가 통상마찰을 우려해 수입 고기의 리스테리아균 오염 조사를 검사항목에서 제외했다가 지난달 3일 냉동만두의 원료로 쓰인 수입 돈육에서 세균이 검출되자 검사를 재개한 것은 국민보건을 등한시한 한 예다. 두 부처가 수입 고기에서 O―157과 O―26균을 이미 검출했으나 「정확한 오염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라는 이유로 늑장 발표한 것도 국민보건이 우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검역망도 더 촘촘히 짜야 한다. 96년의 경우 검역건수가 4만9천여건으로 10여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폭증했으나 검역관수는 1백55명에 불과하다. 검역관 수의 증원과 함께 주요 식품수입국에 검역관을 파견해 현지 사전검역도 실시해야 한다. ▼ 설득력없는 늑장 발표 ▼ 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본부를 독립된 청(廳)으로 승격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돼야 한다. 정부 기구의 확대가 능사는 아니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키 위한 기구 개편의 필요성을 무조건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O―157사건을 통해 노출된 또 하나의 고질적인 병폐는 정부 부처간의 불협화음이다. 농림부가 O―157균의 검출 사실을 사전에 복지부에 알려 검역과 방역 부처간에 내부 협조가 이뤄지는 가운데 정부 대책이 발표되는 형식이라면 국민의 신뢰는 그만큼 높아지지 않을까. 김종완<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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