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국민회의는 이 날짜 동아일보 5면에 게재된 사진 한장을 놓고 발칵 뒤집혔다.
문제의 사진은 김대중(金大中)총재가 6공시절 안기부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嚴三鐸)전 병무청장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동아일보 특종사진.
이날 대구를 방문한 김총재는 수행한 측근들에게 『도대체 보안을 어떻게 했기에 그런 사진이 신문에 나느냐. 이래가지고 선거운동을 하겠느냐』며 몹시 짜증을 냈다는 후문이다.
김총재는 전날 저녁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있었던 행사장에서 문제의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동아일보 사진기자를 급히 불러 세우고는 『절대 사진이 나가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엄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목」도 없는 팔레스호텔행사장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특별본부 지도위원」이라는 정체불명의 명찰을 가슴에 단 엄씨는 이날 행사의 주역이면서도 계속 행사장을 빙빙돌며 「카메라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엄씨는 그동안 김총재의 측근들이 한결같이 『조만간 입당할 것』이라며 영입을 공언해 왔던 인물이다. 안기부기조실장을 지낸 엄씨는 그동안 김총재와 그의 측근들로부터 「공작정치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는 김영삼(金泳三)정부 출범 직후 「슬롯머신 사건」으로 사법처리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엄씨를 이제 김총재가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이 신문에 보도된 것이다.
국민회의에 엄씨 영입은 중요하다. 재경(在京)경북도민회장을 맡고 있는 대구 경북(TK)출신이고 한때 6공실세였던 엄씨의 영입은 김총재의 대선 득표전략상 여러가지로 「상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총재는 한사코 「김대중과 엄삼탁의 사진」이 국민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왜 그럴까. 엄씨가 아직은 「음지(陰地)」에서 활약하는 「비밀당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혹시 엄씨의 영입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뭐든지 가리지 않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질까 두려워 했기 때문일까.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