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급공사 담합비리를 수사해온 검찰이 송사리만 구속하고 고위직 공무원들을 관대히 처분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형평을 잃었다. 검찰은 고위직 공무원들을 불구속 처리하면서 이들의 뇌물액수가 여러 차례 받은 소액을 합한 것이고 민선 자치단체장을 구속할 경우 행정공백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주민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자치단체장에 대한 인신구속이 신중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행정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불구속 처리한다면 민선 자치단체장은 어떤 비리를 저지르더라도 구속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전례가 확립될 우려가 있다. 부지사의 경우에는 행정공백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순천보다 훨씬 큰 서울시나 경기도에서도 행정공백 없이 직무대행체제가 들어섰다. 그들에 대한 지역주민의 평판이 좋다는 검찰의 부연설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이 어떤 경로로 여론을 수집했는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세금을 낭비하고 비리를 묵인한 대가로 뇌물을 받은 단체장을 좋게 평가한다는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피의자는 불구속수사가 원칙이다. 지금까지 경찰 검찰의 수사관행이 구속수사에 편중돼왔던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법의 집행은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엄정하고 공평해야 한다. 죄질이 더 나쁘고 돈을 더 많이 받은 고위직들은 풀려나고 하위직들만 강도높은 처벌을 받는 곳에서 법의 정의를 바로세울 수는 없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방대한 명단이 적힌 뇌물 장부를 압수했으나 황급히 덮고 축소수사로 돌아섰다. 검찰총장은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수사는 가급적 자제해야 하고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는 수사는 곤란하다는 지휘방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방침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시공 건설회사도 아닌 설계감리업체에 대한 수사가 경제를 위축시키거나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고 볼 수는 없다. 업체간에 오간 사례비만 7백억원에 이를 만큼 세금을 낭비하고 건설공사의 부실을 부르는 고질적인 비리를 과감히 도려내는 것이 오히려 사회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을 흔들 수 없다는 이유라면 더더욱 안된다. 공직자들의 기강이 자칫 해이해지기 쉬운 정권말기에 행여 사정의 고삐가 늦춰지는 것으로 공직자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