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베네수엘라]김경호/중산층이 없는 나라

  • 입력 1997년 9월 23일 07시 54분


베네수엘라는 20세기초까지도 커피나 카카오 사탕수수를 재배하던 전통적인 농업국이었으나 20년대 석유개발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부유해졌다. 그러나 저유가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가 악화되기 시작해 90년대에는 거의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만 해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6%, 실업률은 12%내외, 물가상승률은 103%에 달했다. 다행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4달러나 오르는 바람에 석유수출에 따른 순외화수입이 50억달러이상 증가했다. 우리가 순부가가치를 기준으로 50억달러 수입을 올리려면 수백억달러어치 상품을 수출해야 한다. 이에 비해 베네수엘라는 국제유가가 4달러만 인상돼도 경제가 활기를 띤다. 부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자원부국 베네수엘라가 국제유가의 등락에 희비가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석유수출로 얻어진 재원을 산업발전과 교육투자에 유효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일차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속내까지 파고들면 여러가지 구조적 문제점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훌륭한 지도자가 없음을 들기도 한다. 국력을 집중시켜 산업을 개발시킬 능력이나 비전 또는 신뢰성을 갖춘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석유가 화근이란 말도 한다. 석유가 나지 않았던 시절에는 커피나 사탕수수를 경작하면서 풍요롭지는 않지만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석유개발로 소득이 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소비풍조가 만연하면서 부가가치가 낮은 농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편의주의 한탕주의가 만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인다면 베네수엘라는 남미 중에서도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중산층이 거의 없다는 점을 꼽고 싶다. 10%내외의 기득권층은 국가경제나 나라발전은 뒷전이고 자신의 재산이나 기득권보호가 최대관심사일 뿐이다. 국민 대다수인 빈곤층은 하루하루 굶지 않고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다른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나라 경제가 발전해야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중산층이 없다는 것이 베네수엘라의 가장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지금 우리나라 중산층의 위상이나 역할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김경호(카라카스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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