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이시영/아비뇽 연극제를 보고

입력 1997-09-20 20:26수정 2009-09-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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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유서깊은 고도(古都) 아비뇽에서는 매년 7월 중순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비뇽 연극제」가 열린다. 올해로 51회였던 이 연극제는 47년 당시 30대의 유망한 연극배우 겸 감독이던 장 빌라르가 1주일 동안의 소규모 지방예술제로 시작한 것이다. 아비뇽은 14세기에 가톨릭 교황청이 로마로부터 약 1백년에 걸쳐 옮겨왔던 도시로 웅장한 교황궁과 이를 중심으로 세워진 성벽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교황궁 안쪽 아늑한 마당에 야외무대로 관중석을 만들고 연극과 음악을 공연하면 그 분위기와 음향효과 때문에 최고의 예술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빌라르 감독의 착안이었다고 한다. 창시자인 빌라르 감독은 79년까지 무려 32년 동안 이 연극제의 총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베르나르 훼브르 다르시에가 총감독에 임명돼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50년 동안 두 명의 총감독이 기울인 일관성있는 노력과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이 연극제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 최고 최대의 연극제로 성장했다. 올해만 해도 전세계에서 30여개의 최고수준급 극단과 무용단을 초청, 고전과 최신작품을 적절히 배합해 공연함으로써 2주일 동안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내년에는 이 연극제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한국이 주빈 초청국의 하나로 선정돼 10여개의 극단과 무용단을 참가시킬 예정이다. 한국 연극계로서는 세계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올해 아비뇽 연극제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하면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프랑스 징가로 극단의 「에클립스(월식)」였다. 「에클립스」는 한국의 국악연주자 7명이공연 내내 반주음악을 연주하는 사상초유의 특이한 공연물이었다. 판소리 대금 장구 가야금 아쟁 피리 해금이 절묘한 선율과 리듬을 펼치는 동안 무대에서는 흰 말과 검은 말, 그리고 흰옷과 검은옷을 입은 배우들이 국악연주에 맞춰 신기(神技)에 가까운 동작과 춤을 선보여 관중들을 황홀감과 경이로움으로 이끌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동서양의 판이한 예술이 하나로 조화돼 관중을 완전히 압도하는 새로운 예술창조의 경지를 보면서, 나는 우리 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흥분을 가눌 수 없었다. 징가로 극단의 바르타바스 감독은 「에클립스」의 협연대상을 찾기 위해 작년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한국에서 국악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국악연주자들이 입는 의상까지도 자신의 새로운 연극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연극에 대한 지금까지의 통념을 완전히 깨면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창작물이 태어났다. 이것은 고전작품 연주에만 주안점을 두어온 우리 국악인들에게도 참신한 충격이며 자극이었다. 바르타바스 감독의 예리한 감수성과 통찰력이 이루어낸 것처럼 우리도 국악을 좀더 미래지향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다. 징가로 극단은 앞으로 3년 동안 전세계를 순회하며 「에클립스」를 공연할 예정이다. 한국의 관객도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시영(駐프랑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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