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인제씨는 국민이름 팔지 말라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이인제(李仁濟)경기지사가 결국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3개월후 대선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 그의 선택은 분명히 민주주의 기본규칙을 등진 행위다. 당인(黨人)으로서 정당에,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저버렸다. 정치의 진취적 발전을 위해 출마한다는 이씨의 변은 오히려 정치를 퇴영시키는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한다. 모두가 지키고 가꿔야할 정치적 사회적 규범과 약속은 스스로 깨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국민의 부름」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집권여당의 대선후보 자유경선 의미는 이제 완전히 무색해졌다. 민주적 절차속에 당원의 뜻을 모아 공직후보를 결정하고 승자와 패자가 한마음으로 정권창출에 매진한다는 정당정치의 기본룰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경선과정에서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던 이씨가 끝내 약속을 어긴 것을 그 개인이나 신한국당 내부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단계 성숙 계기를 맞았던 우리 정당정치의 시계바늘을 다시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씨는 자신의 출마가 『국민의 부름에 따르는 것』이라며 『정치명예혁명을 완수, 국민정치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소명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스스로 국민과의 약속을 뒤엎고 정치의 규칙을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럼없이 국민과 새정치를 얘기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다소 높게 나오는 것을 두고 국민을 들먹였는지 모르나 원칙과 명분없는 출마를 국민의 이름으로 호도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세대교체를 통한 낡은 정치 청산 주장도 그렇다. 국민들이 갖는 세대교체의 기대는 분명 크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원칙을 지키며 민주주의를 키워나가는 참신한 정치인을 원하고 있음을 간과해서 안된다. 낡은 정치를 타파하자면서도 자신은 구시대적 정치인조차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배신과 위약의 행태를 보임으로써 이씨는 오히려 시급히 교체돼야 할 정치인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말이 없게 됐다. 이런 비판을 안고 출마하는 이씨가 설혹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경선결과 불복이라는 짐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또 약속위반을 포함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퍼질 우려도 크다. 이런 가치관의 전도현상이 빚어지는 사회에서 과연 정치발전이 가능할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씨의 출마선언으로 12월 대선은 일단 5자(者)구도로 가닥을 잡았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나 이씨의 경우처럼 국민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행태가 더 있을 개연성은 크다. 추석연휴동안 국민 모두 진지하게 후보들의 됨됨이를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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