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지훈(趙芝薰)이 매긴 술꾼의 등급은 18단계다. 술을 마실 줄은 알지만 잘 안마시는 불주(不酒)에서부터 술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열반주(涅槃酒)까지를 열거하고 있다. 한의서를 보면 적당히 마시는 술은 양약(良藥)이라 했으니 술 마시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이른바 술마시는 것에 취미를 붙인 주도(酒徒)에 이르면 술꾼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때부터가 문제다
▼술 때문에 건강을 해쳐 술이 있으되 마실 수 없는 주종(酒宗)은 말할 것도 없고 주선(酒仙) 주광(酒狂) 주호(酒豪)라는 별칭이 붙게 되면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접어든 셈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술꾼 개인의 차원을 넘어 가정과 사회의 건강을 해치고 국가경제를 좀먹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술 소비량은 해마다 늘고 있고 폭음 과음 등의 음주문화도 바뀌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 때문에 입는 경제 사회적 손실은 95년도 기준 1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총생산의 4% 수준이니 놀라운 일이다. 부문별로 보면 생산성 감소 6조원, 조기 사망에 따른 손실 3조원, 의료비 1조원, 술값 4조원 등이다. 그러나 여기에 음주관련 범죄피해, 인간성의 황폐화, 가정파탄 같은 다른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음주의 피해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공자는 음주와 관련, 「주무량(酒無量), 불급란(不及亂)」이란 교훈을 남겼다. 「각자의 건강이나 기분에 따라 적당히 마시되 취해서 문란함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사회에서 술을 추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잘못된 음주문화는 바꿔야 한다. 술을 강요하는 풍토가 과음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바로 갖가지 사회병리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해 정부는 「술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정작 싸움은 술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