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용서못할 유괴범죄

  • 입력 1997년 9월 12일 20시 07분


그런 일만은 없기를 이 땅의 수많은 엄마 아빠들이 수없이 빌었건만…. 잔인한 현실은 끝내 아무 죄도 없는 천진난만한 나리양을 부모품에서 빼앗고 말았다. 나리양의 죽음이 발표되는 순간 전국은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사건은 나리양 부모만의 비극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 돼야 하는가. 「인간의 탈을 쓴 짐승」 「인명경시풍조」 등의 진부한 말로 범인들을 비난하는 것도 이제는 염증이 난다. ▼ 준엄한 법의 응징을 ▼ 물론 공범들을 모두 붙잡아 엄격한 형사처벌을 가해야 함은 당연하다. 카드빚 등을 갚기 위해 연약한 여덟살짜리 어린이를 범죄대상으로 삼은 것부터 용서할 수 없다. 게다가 자신들의 얼굴이 탄로나 붙잡힐 것이 두려워 죽이기까지 했다니…. 준엄한 법의 응징을 받아 마땅하다. 이 시점에서 또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무거운 형벌을 가해도 범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 인류의 경험이다. 전과자들이 양산되고 있고 재범률이 높다는 현실이 이를 잘 증명한다. 사법제도만으로는 범죄방지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방식도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 이미 실증됐다. 범인 한명 한명에 대한 형사처벌, 즉 1대1식 대응만으로는 범죄의 완전소탕은 요원한 일이다. 가령 웬만한 병균이 우리 몸에 침투하더라도 건강한 체질에 저항력이 강하면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원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온갖 비리와 부패, 범죄현상은 전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토양에서 움트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 병리현상의 반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무엇이 범죄행동을 주로 유발하느냐에 대해서는 유전적 요인으로 보는 학설과 환경적 요인을 드는 학설이 있다. 즉 범죄형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학설과 사회속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학설로 양분된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물리학자 롬브로조는 억센 머리카락, 긴 귓불, 큰 턱, 튀어나온 이마 등 신체의 특징으로 범죄형을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다른 학자는 두개골의 특정부위 손상과 관련이 있다는 「골상학」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생물학적 특징으로 범죄형 인간을 구분해내는 학설은 옛날 얘기가 된지 오래다. 범죄는 환경적 요인의 결과, 즉 사회적인 산물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잡았다. ▼ 사회환경 바로 잡아야 ▼ 요컨대 범인에 대한 1차적 응징 외에 우리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현상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된다는 결과주의,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도 부자만 되면 된다는 황금만능주의, 교통신호와 법규를 어기더라도 나만 빨리 가면 된다는 속도주의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들의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이며 썩은 행태가 국민의 행동양식에 끼치는 영향은 그중 으뜸이다. 특히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치안기능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 책무다.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생존의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하는가. 육정수(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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