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최송묘/호랑이 시할머니

  • 입력 1997년 9월 1일 08시 10분


90세가 넘은 시할머니께서 며칠간 묵으러 오셨다. 하나뿐인 아들(내게는 시아버님)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며느리와 함께 사시는 할머니에게 손자는 그야말로 보물이나 다름없어 가끔 들르신다. 결혼한지 10년인데도 여전히 살림이 서툴고 어른 모시기는 특히 어렵다. 별로 잘 웃지 않는 할머니는 식사하실 때나 과일을 잡수실 때도 꼭 화난 모습인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한다. 내가 뭐 잘못한 것 아니냐고 남편에게 물으면 젊으실 때 욕 잘하고 목소리 큰 호랑이 할머니이셨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고만 귀띔한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뜨거운 커피를 달게 타서 할머니와 마주앉아 마시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보릿고개를 겪을 때 백구 한마리를 길렀단다. 사람 먹기도 모자라는 식량을 개에게 준다며 이웃사람들이 차라리 잡아먹자고 했다. 할머니는 차마 기르던 개를 그럴 수 없어서 밤중에 멀리 도망가라며 백구를 떼밀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백구는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으로 몇달을 보내고 추수철이 다가오자 백구가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듯했다며 환한 표정을 지으셨다는 할머니. 또 있다. 동네에 결핵을 앓다가 숨진 과부가 있었다. 추운 겨울인데도 행여 전염이라도 될까 우려해 아무도 거두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와 교회 집사가 나서서 함께 염을 하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묻어주셨다. 남겨진 어린 남매에게는 『이곳이 너희 어머님 계신 곳이니 잊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장성한 그 남매는 몇년 전까지도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왔었다. 이런 회상에 젖어 옛얘기를 해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여전히 여장부다. 그게 바로 재작년의 모습이었는데 올해 들면서는 별로 말이 없으시다. 목욕시켜드리고 나면 앉아 계시기도 힘에 부치는좍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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