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85)

  • 입력 1997년 9월 1일 08시 10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11〉 아리는 마루프에게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물건을 외상으로 줄 뿐만 아니라, 무슨 말을 해도 모두 신용한다는 것을 안 나는 상인들을 찾아가 이렇게 말해보았지. 「나는 카이로에서 온 상인입니다. 이제 곧 짐이 도착할 텐데 짐을 넣어둘 창고가 필요합니다」하고 말이야. 그러자 모두들 내 말을 믿고 숙소와 창고를 마련해주더군. 그런 다음 나는 또 말했지. 「제 짐이 도착하는대로 갚아드릴 테니 누가 일천디나르를 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짐이 도착할 때까지 여러가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야겠으니까요」. 내 말을 들은 상인들은 두말하지 않고 나에게 돈을 빌려주더군. 정말이지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데가 있어. 어떻게 보면 지극히 친절한 거고, 어떻게보면 순진한 거고, 또 어떻게 보면 존경스러울 만큼 신용이 있는 거지. 그러니까 처음 본 나에게 그 큰 돈을 아무 거리낌없이 빌려준 거지』 마루프는 몹시 흥미로워하며 듣고 있었다. 아리는 계속했다. 『상인들로부터 빌린 돈으로 나는 시장으로 가 상품을 사 이튿날 되팔았어. 운이 좋았던지 나는 금화 오십 디나르의 이익을 남겼지. 다음날도 나는 같은 식으로 장사를 했어. 나한테는 장사 수완이 있었던지 물건을 사고 팔 때마다 상당한 이익이 남았어. 그리고 사람들과도 사귀고, 그들에게 대범하고도 후하게 대접했기 때문에 모두들 나를 좋아하게 되었지. 그 후로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기게 되었으니 나는 마침내 본래 밑천의 몇 곱절이나 되는 재산을 모을 수 있게 되었네. 그리고 불과 이태 뒤에는 이 도성에서도 손꼽힐 만큼 큰 부자가 되었지』 듣고 있던 마루프가 말했다. 『정말 대단하네. 이 타관에서 한푼 없는 혈혈단신으로 이렇게 성공을 하다니』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세상은 겉치레와 속임수요, 타관 망신은 사흘 안 가 잊힌다고. 자네도 말일세, 남이 묻거든 곧이곧대로 말하지 말게. 카이로에서 신발수선공을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며 살다가 못된 마누라한테 쫓겨 도망쳐 왔다고 말해보게, 사람들은 자네를 신용하지 않을 것이고, 이 도성에 사는 한 자네는 웃음거리가 될 걸세. 그렇다고, 마신을 만나 마신이 여기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말을 했다간 모두들 자네를 무서워하며 가까이 하지도 않을 걸세. 그런 소문이 나는 날에는 내 체면도 말이 아닐 걸세. 왜냐하면 나도 카이로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듣고 있던 마루프가 물었다. 그러자 아리는 하인들에게 분부하여 금화 천 닢짜리는 됨직한 상인용 의복 한벌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마루프에게 말했다. 『자, 우선 옷을 갈아입게』 마루프는 아리가 시키는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보니, 원래 인품이 천하지 않은데다가 인물이 잘 난 마루프는 더없이 풍채가 좋고 우아해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아리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자, 그럼 자네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쳐주지』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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