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금동근/지하철역에 핀 「시민정신」

  • 입력 1997년 8월 25일 20시 17분


25일 오전 9시경 서울지하철 2, 4호선이 교차하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 사당역 승강장.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악』하는 여자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김모씨(25·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는 급히 비명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당고개행 4호선 지하철이 멈춰서 있었고 입구쪽에서 한 20대 남자가 칼을 휘두르며 승객들을 위협했다.지하철 바닥에는 이미 피가 흥건히 괴어 있었다. 순간 건장한 30대 남자가 칼든 남자를 덮치자 김씨는 다른 승객 10여명과 함께 가세했다. 승객들은 20대 남자의 칼을 빼앗고 팔다리를 결박했다.5분 가량 뒤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상황 끝」. 이 사이 일부 승객은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는 피해자 박모씨(22·여·회사원)를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지난해 4월 경기 안산시 모 미용실에서 박씨와 함께 일하다 짝사랑에 빠진 범인 한모씨(29·무직). 한씨는 자신을 피해 서울로 직장을 옮긴 박씨를 만나기 위해 이날 오전 일찍부터 박씨가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는 2호선 한양대역에서 계속 기다렸다. 박씨가 나타나자 한씨는 지하철을 따라 타고 사당역까지 쫓아 가며 끈질기게 구애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박씨는 냉랭했다. 한씨는 박씨가 2호선에서 내린 뒤 계속 쫓아가다 4호선으로 갈아타려는 순간 품고 있던 칼을 꺼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싸는 승객들을 향해 마구 칼을 휘둘렀다. 한씨는 그러나 1분도 채안 돼 승객들에게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범인을 사로잡고 피해자를 급히 병원으로 옮겨준 승객들의 빛나는 「시민정신」 덕택에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고마워했다. 〈금동근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