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76)

  • 입력 1997년 8월 23일 08시 07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2〉 가게로 간 마루프는 자신의 불행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자비로우신 신이여! 제발 튀김국수를 살 돈을 내리시어 저로 하여금 오늘밤 마누라의 심술로부터 시달리지 않게 하여 주소서!』 기도를 마친 마루프는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고 앉아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 신발을 고치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되자 마루프는 마누라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해가 기울자 마루프는 가게 문을 닫고 시름없이 밖으로 나왔다. 튀김국수는 고사하고 빵을 살 돈조차 벌지 못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루프는 튀김국수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얼빠진 사람처럼 가게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본 과자장수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시오. 마루프, 왜 울고 있소? 어찌된 일인지 말을 좀 해보시오』 그리하여 마루프는 실토했다. 『사실은 말요, 아침에 내 마누라가 튀김국수를 사달라고 했소. 내 마누라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건 당신도 잘 알 테지. 그런데 나는 오늘 하루 튀김국수는커녕 빵을 살 돈도 벌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마누라가 무서워』 그러자 과자장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몇 온스의 튀김국수가 필요하오?』 『여섯 온스쯤이면 되겠지만……』 마루프가 이렇게 웅얼거리자 과자집 주인은 튀김국수 육온스를 저울에 달아놓고 말했다. 『버터는 우리 가게에 있지만 벌꿀은 마침 다 떨어져서 없어요. 그 대신 아주 좋은 조청이 있어요. 이 조청은 최상급품으로 꿀보다 나아요. 조청을 발랐대서 나쁠 건 없겠지요?』 마루프의 입장에서는 외상으로 얻어가는 판이라 꿀과 조청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럼, 조청을 발라주구려』 과자장수는 국수를 기름에 튀긴 다음 임금님 식탁에 올려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듬뿍 조청을 발랐다. 튀김국수가 갖추어지자 과자장수는 또 물었다. 『빵과 치즈도 드릴까요?』 과자장수가 이렇게 묻자 마루프는 겨우 입을 열어 웅얼거렸다. 『그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자 과자장수는 빵 네 조각과 치즈 한 개를 꺼내어주면서 말했다. 『아시겠죠, 마루프? 십 스누후어치의 튀김국수에다가 반 디르함짜리 빵 네 개, 한 디르함짜리 치즈 하나, 모두 합쳐 십오 스누후어치를 외상으로 드립니다. 자, 이제 마나님한테 가서 한바탕 화끈하게 해 보세요. 여기 목욕비도 따로 드릴 테니 가지고 가시오. 목욕비는 당신에 대한 우정으로 내가 그냥 드리는 것이고, 외상값은 이틀이고 사흘이고, 알라께서 당신께 나날의 양식을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려줄 테니 걱정할 것 없어요. 어쨌거나 마나님하고나 잘 해보도록 하시오. 당신같이 선량한 사람이 마누라한테 더 이상의 시달림을 받는 걸 우리는 원치 않으니까요』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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