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三星)그룹이 지난 3월부터 정부와 공조(共助)해 기아(起亞)자동차 인수를 극비리에 추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음이 본보 단독보도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삼성의 내부 보고서는 소문으로만 나돌던 「삼성의 기아인수 음모」가 실제로 있었을 개연성을 높이면서 기아측 주장이 근거없는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음모설이 사실이라면 삼성은 물론 이 정권의 도덕성과 정책신뢰성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이 될 것이다. 정부와 삼성은 음모설의 진위를 밝히고 한점 의혹 없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재계의 음모설 제기는 삼성의 승용차사업 허가에서 비롯한다. 세계 자동차수급전망을 감안하면 후발업체인 삼성의 자동차사업이 결실을 거두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金泳三(김영삼)대통령 퇴임후 자동차산업 부실이 불가피, 책임을 면키 어렵기 때문에 미리 기아를 삼성에 인수시킬 것이라는 게 음모설의 골자다. 여기에 권력핵심이 작용한다는 설과 더불어 심지어 김대통령 임기전에 기아를 삼성에 넘겨주고 그만둔다는 소문도 없지 않았다.
삼성이 작성한 지난 4월의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보고서와 이번 기아인수추진 보고서는 음모설의 명백한 증거라고 재계는 주장한다. 기아사태가 국민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음에도 姜慶植(강경식)경제부총리와 정부 관계자들은 『개별기업 문제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 『기아자동차는 살리되 경영진은 바꿔야 한다』는 등 제삼자인수를 시사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인수합병(M&A)제도 개선안에 삼성의 기아인수가 수월해질 수 있는 내용을 넣었다가 유보한 것이나 정부의 M&A활성화방안 등도 음모설의 일환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금융단은 기아 관련 업체의 진성어음이나 수출신용장까지 결제를 거부하고 金善弘(김선홍)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기아측이 제시한 자산매각이나 인원감축 등 자구노력은 거들떠 보지 않고 다른 부도유예협약 기업에 비해 지원에 인색,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와 금융단이 기아를 살리기보다 목줄을 죈다는 비난도 일었다.
기아사태 수습이 지지부진하면서 국가경제에도 엄청난 혼란과 손실을 초래했다. 건실한 기아 협력업체들이 연쇄부도 또는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금융기관의 해외신용도 추락으로 차입금리가 급등하고 그나마도 외화차입이 중단돼 자금시장 경색과 외환시장의 혼미를 불렀다. 신용공황과 외환위기설로 금융은 지금 살얼음같은 위기상황이다.
음모설의 사실 여부는 명명백백하게 가려져야 한다. 『음모는 없다』는 강부총리의 설명이나 『실무자 차원에서 만들어 본 보고서로 폐기된 것』이라는 삼성측의 해명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음모설의 실체를 밝히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서 특위를 구성,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아울러 기아사태는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제삼자인수를 전제로 수습돼서는 안된다. 우선 기아자동차를 정상화하는 데 정부와 금융단 기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자동차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구조조정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