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김윤식 「천지 가는 길」

  • 입력 1997년 7월 22일 08시 09분


문학비평가 서울대 김윤식교수가 중국 이곳저곳을 돌며 사유한 글을 담은 「천지 가는 길」을 다음 주초 「솔」에서 펴낸다. 그는 그간 일본과 구미의 문학 유적지, 미술관 등을 공들여 찾아다녔다. 자신이 「황홀경(恍惚境)」이라 이름 붙인 작품세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인 아름다움을 육안으로 마주하려는 여정이었다. 「지상의 빵과 천상의 빵」에 이 소회가 담겨있다. 여로와 문학, 풍경과 사유가 함께 어우러진 글이다. 「천지 가는 길」 또한 그의 눈에 비친 중국 풍광을 담았다는 점에서 기행문이라 할 수 있으며, 발닿는 곳에 얽힌 고금의 문학을 다뤘다는 점에서 문화비평서라 할 수 있다. 그가 제목으로 삼은 「천지(天池)」는 백두산 천지가 아니다. 천산산맥 동쪽 끝 보그다봉 중턱에 자리한 호수다. 백두산 천지가 빗물 괸 화산 연못이라면 보그다봉 천지는 빙하 녹은 천연호수다. 백두산 천지가 성지라면 보그다봉 천지는 찻집과 여관이 늘어선 세속의 호수다. 당연히 방문객의 긴장도 풀어진다. 그는 길벗들의 분방한 객담을 통해 유치환의 「의주길」, 이문구의 「관촌수필」, 김기림의 「기관차」를 소개한다. 호수가 서역 가는 길에 있어 오승은의 「서유기」, 왕유의 송별시도 나온다. 상해에 들르면서는 프랑스에 「춘향전」 「심청전」을 번역 소개한 구한말의 홍종우 이야기를 들려준다. 홍종우는 백년전 상해 동화양행에서 망명객 김옥균을 암살했던 이다. 「대역무도한 자로서 동료들을 참살하고 일본군을 끌어들여 국왕을 괴롭혔다」는 것이 죄목. 김교수는 당시 일본 외무성 훈령과 보고서, 국내 자료들을 뒤져 아직 사학계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이 암살의 전말과 한중일 삼국간의 외교적 긴장을 상술하고 있다. 『국내에 송환된 김옥균의 시신은 능지처참됐으며 고종은 일본과의 마찰 없이 홍종우에게 관직을 내리기 위해 과거를 마련,제주 목사로 부임케 했다』 이번 글모음의 정수는 초입부에 나오는 서안 기행이라 할 수 있다. 당나라 수도 장안의 동북지역인 서안 일대에는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진시황릉과 지하군단, 명대 13황제의 무덤, 양귀비가 목욕하던 여산 온천궁, 한대에서 당대까지 명필 1천기의 비석이 밀림처럼 서있는 비림(碑林)박물관 등이 밀집해 있다. 김교수는 두보와 이백, 사마천과 백거이를 끌어들여 이 고적들의 문학적 의미를 복원하고 있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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