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는 관광의 나라다. 매년 관광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총수출액 25억달러의 4분의1에 해당하는 6억달러에 이른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국민이 친절하고 낙천적이다. 정부관료들이 관료주의에 젖어 국민을 불편하게 해도 그냥 지낸다. 아니 불감증에 만연된 사람들 같다.
요즘 코스타리카의 주요 강들이 오염돼 악취가 심하게 난다. 우기에는 그런대로 참을 만한데 건기가 되면 강 근처는 코를 막고 다녀야 할 정도다. 주요 강물의 지류는 생활하수에서 나온 세제거품으로 하얗게 덮여서 바람이 불면 거품이 하늘을 떠다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통신시장 개방협상이 끝났을 때 코스타리카는 서명을 거부했다. 이에 코스타리카 통신시장 개방을 논의하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는데 AT&T와 MCI는 코스타리카의 구식 통신망을 모두 걷어내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다시 설치하는데 걸리는 기간으로 각각 2년, 2년반을 제시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 전력통신청의 책임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10년은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AT&T사 참가자가 『미국 뉴욕시의 통신망도 2년안에 모두 바꿔 설치할 수 있는데 코스타리카 전체 통신설비 규모가 뉴욕시 전체의 몇 %나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자 그 관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고 한다.
코스타리카 중앙은행이 지난 4월 수표법을 개정해서 1만5천콜론(약 6만원) 이상의 수표는 만 24시간 은행에 예치했다가 찾아가도록 했다. 일부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수천만원대의 수표를 돈세탁하는데 이용했는데 앞으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이때문에 시중에서 물건을 사려면 1만5천콜론 이상은 반드시 현금으로 내야 한다. 자동차 타이어 한짝에도 2만∼3만콜론이고 보면 어쩌다 타이어 펑크라도 나면 꼼짝없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불평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국민들의 불편은 쌓여가는 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치앞의 이익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는 정치인과 코스타리카의 관료사회를 보면서 우리 나라는 어땠는지 떠올려 본다.
고영욱(산호세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