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장일순 지음「나락 한알 속의 우주」

  • 입력 1997년 6월 17일 07시 54분


<장일순 지음/녹색평론사/5,000원> 우리 생명운동을 사상적 실천적으로 뒷받침해온 「재야의 어른」 无爲堂(무위당) 장일순선생이 94년 작고하기 전까지 행했던 강연과 대담 글들을 모은 책이다. 개문유하(開門流下),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가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번 글에는 개문(開門)한 인간의 면모가 보인다. 천주교도였으되 노자가 주장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소국과민(小國寡民)에 깊숙이 빠졌으며 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을 껴안고 있었다. 그가 늘 언급해온 「티끌 안에 우주가 있다(一微塵中 含十方)」는 말은 불교의 화엄사상에 바탕한 것이다. 차강 박기정으로부터 서예를 배운 그는 한문 문장을 가끔 인용하곤 했으나 「유하(流下)」의 정신을 잃지 않아 누구나 알기 쉬운 담백한 언어들을 써왔다. 이 미덕은 이번 글모음의 문체와 화법을 이루고 있다. 이는 「낮은데로 임하고자 한」 그의 사상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는 청장년 시절에는 힘없는 민초들을 위해 재야운동을 펼쳤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가련한 미물들을 위하는 사랑으로 일했다. 「쥐를 위해 밥을 남겨두고 모기가 딱해 등불을 켜지 않으며 푸른 풀들 돋아나는 계단을 함부로 딛지 않는다」는 묵암선사의 게송(偈頌)은 이번 글모음에도 인용되고 있다. 생명과 환경의 깃발을 내걸고 우리 고유의 생태학을 이끌어내고자 애쓰는 영남대 김종철교수와 「녹색평론」사가 자연과 어울려 곧고 청빈한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으로 좇아 그렸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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