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딸과 네살 아들을 둔 주부다. 얼마전 아들이 감기 기운이 있는 듯했다. 되도록이면 스스로 병을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소 가벼운 감기에는 감잎차나 무즙 등을 먹이곤 했기에 그날도 무즙을 마시게 하고 잠을 재웠다.
아이가 계속 괴로워하기에 체온을 재보니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갔다.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었지만 열은 내리지 않았다. 나중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주먹을 쥘 수도 없을만큼 부어 올랐다. 시계를 보니 새벽1시50분.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아이를 업고 골목을 뛰어내려가니 마침 택시 한대가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 그 앞을 가로막으며 『아이가 아파서 그러니 병원까지 좀 태워주세요』하고 사정했다. 40대 초반의 남자승객이 『어서 타세요. 내가 그 병원 가는 길을 잘 아니까 갑시다』하며 운전사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 승객은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는 『택시비는 걱정 말고 어서 의사에게 보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방향이라서 태워준 것이 아니라 일부러 병원까지 태워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진료받고 회복돼 한시간쯤 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감사한 마음을 그분에게 전하고 싶다.
고옥련(서울 관악구 남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