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YS에게 남은 일

  • 입력 1997년 6월 2일 20시 09분


오늘로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임기는 꼭 2백67일 남았다. 여권 사람들에게는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나 솔직히 대통령의 「남은 날」을 헤아리면서 하루하루 착잡한 상념을 떨치기 어렵다. 지난 87년 全斗煥(전두환)정권이 이른바 「4.13」 호헌담화를 발표해 나라를 누란(累卵)의 위기에 몰아넣은 후 10년만에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다. 이번 「5.30」 대통령담화를 앞두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래도 「YS다운」 뭔가를 보여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거는 듯했다. 실제로 사회 원로급이나 김대통령을 지지해온 듯한 인사들까지 담화직전 언론을 통해 「진심이 담긴 겸허한 자세로 국민앞에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답은 뜻밖이었다. 자신을 염려하며 도와주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커다란 좌절과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이는 대선자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의를 일축한 것은 물론, 무슨 내용인지 분명치도 않은 「이판사판식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사고(思考)와 자세로는 국정 어느 구석의 질곡도 풀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기야 김대통령이나 참모진이나 외면해서는 안될 여론을 읽을 줄 아는 밝은 눈과 진정한 민의를 들을 줄 아는 열린 귀를 가졌던들 오늘의 불행한 사태가 왔을 리 없다. 대선자금 문제만 해도 언론은 일찍이 경종을 울리고 해법까지 제시했었다. 현 정권이 출범한지 20여일만인 93년 3월16일, 본보는 「세계의 눈」이라는 칼럼(鄭求宗·정구종동경지사장·당시)을 통해 이미 오늘의 상황을 예견했었다. 『김대통령은 최소한 대선자금의 흐름만이라도 백서형식으로 공표하고 앞으로는 이같은 정치행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선거기간중 김대통령을 지원한 「얼굴없는 돈」과의 유착여부를 국민들이 검증할 수 있는 장치로서도 필요하다. 이런 절차없이 「깨끗한 정치」만 외치면 「나는 식사끝났으니 부엌문 닫아라」하는 식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승리감에 도취된 위정자들중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이번 金賢哲(김현철)씨 사건 수사에서 밝혀졌듯이 쓰고 남은 대선자금을 마치 사금고(私金庫)처럼 관리하는 파렴치한 일이 권부(權府)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로 인해 나라가 몇개월째 난국속에 표류하는데도 「5.30」 담화에서 보듯 민의불감증과 파렴치가 치유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4.13」에서 「6.29 선언」으로 이어지는 10년전의 체험은 경우에 따라 민의는 가혹한 게 아니라 오히려 관대할 수도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들도 아닌 「민권(民權)」을 강탈한 당사자들이 온갖 희생을 강요하다 힘에 부쳐 돌려주었을 뿐인데 선한 국민들은 열광을 아끼지 않았다. 경위야 어떻든 「내일」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오늘 김대통령이 먼저 골몰해야 할 일은 국민들에게 내일을 열어줌으로써 지난날의 비정(秕政)으로 진 채무를 갚는 것이다. 야당과의 싸움에 승부를 거는 모습으로는 안된다. 협박이나 파괴적 접근방식으로는 더더구나 안된다. 지금 형편으로는 「국정챙기기」도 「정치개혁주도」도 힘에 닿지 않는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모두 신명을 다해 국민적 신뢰 복원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의 일이다. 이제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다. 이도성(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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