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수정씨(28)는 최근 서울 양재동의 27평형 아파트로 전세를 들면서 3백여만원을 들여 방 3개와 거실에 벽지를 바르고 바닥에 모노륨을 깔았다. 당시 집 주인이 도배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아 관두라고 했다.
이씨는 『단 1년이라도 평소 꿈꿔온 분위기의 집에서 살고 싶어 집 단장비를 별도로 마련한 뒤 집을 구했다』면서 『이사갈 때는 버리는 돈이 되겠지만 쾌적한 환경을 위해 썼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 주례동의 32평형 아파트로 전세를 든 주부 손효정씨(26)는 지난해 2백만원을 들여 베란다 문턱을 없애고 거실을 확장하는 공사를 했다. 바닥엔 우드륨을 깔았다.
요즘 서울 강남을 비롯해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젊은 부부들 중에는 전세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돈을 들여 집안을 뜯어고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경향은 2,3년 전부터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최근 확산되고 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주인이 집을 개보수하도록 돼 있지만 젊은 임차인들은 이런 법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법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많고 알아도 주인과 「신경전」을 벌이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에 들어갈 때도 시공회사가 일률적으로 깐 벽지나 장판의 색상이 싫다며 새 단장을 하는 이가 많다.
서울 반포동의 서초종합인테리어에서는 한달에 가정집 10여곳의 내부를 고치는데 그 중 서너 곳이 세입자가 요청한 것이다. 3백만∼4백만원을 들여 벽지와 장판을 바꾸거나 주인이 도배를 해줄 때 세입자가 주인에게 1백여만원을 더 줘 고급벽지를 골라쓰도록 부탁하기도 한다. 거실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통유리문으로 바꾸기도 하고 1천만원 이상을 들여 천장이나 마루를 원목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서울역삼동의 인테리어 업체 엘권스디자인의 권장욱대표는 『유럽풍의 분위기를 내기위해 80만∼2백만원을 들여 방과 거실 벽을회로 칠하는 세입자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다음 임차인이 새로 도배를 원할 경우 칠을 벗겨내야 하기 때문에 집 주인을 몇 번씩 찾아가 조르기도 한다고.
삼성소비자문화원의 조은정박사는 『소유가치보다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젊은층 중 무리해서 집을 사는 것보다 자신의 형편에 맞는 집을 골라 잘 꾸미고 살고자 하는 이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을 큰 재산으로 여겨온 장년층 임대주는 『젊은이들이 흔전만전 돈을 써가며 남의 집을 멋대로 손질한다』면서 불쾌해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임대주와 임차인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는 것.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