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카드 과소비 『아빠가 미워요』

  • 입력 1997년 5월 22일 19시 59분


『동정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아빠. 우리 아빤 내가 불우이웃돕기 성금 5천원만 달랬더니 안된다는 거다. 3천원이 적당하다며…. (중략) 그러고 술값은 넘쳐흘러요. 또 전에 내 구두 30켤레 살 수 있는 돈 30만원을 술값으로 처리했다. (중략) 아빠 같은 과소비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다』(초등학교 3학년 윤모양의 일기) 회사원 윤모씨(37)는 동료들과 마신 술값 30만원을 신용카드로 그었다. 윤양은 아빠에게 청구된 신용카드 사용명세서를 우연히 보고 아빠를 이처럼 호되게 비판하는 일기를 썼다. 윤씨는 우연히 딸의 일기를 본 뒤부터는 신용카드 사용을 중단했다. 신용카드가 없었다면 한달 용돈을 하룻밤 술값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반성하면서. 경제전문가들은 신용카드는 편리한 결제수단이긴 하지만 충동과소비를 부추긴다고들 말한다. 미국에서도 신용카드의 등장으로 「소비성향은 1보다 작다(즉 소비수준이 소득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경제학의 오랜 가설이 설득력을 잃었다. 21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최근의 소비자 신용 동향」을 보면 한국인들이 신용문화가 훨씬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보다 신용카드를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카드 이용금액을 개인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비율이 미국은 11.2%, 일본은 4.2%인데 한국은 12.6%. 한은은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외상문화가 경상수지적자를 심화시키고 물가상승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마이너스통장 가입자가 크게 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수단으로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고 있다. 『매달 비씨카드 결제액이 1천6백억원이라면 1천억원만 자기자금으로 결제되고 6백억원은 마이너스통장 등 대출로 결제된다』(조흥은행 관계자) 그러고도 신용카드 연체잔액이 해마다 늘어 작년말 현재 9천3백억원에 달했다. 월급 받아 신용카드 빚 갚기 바쁜 사람에게 윤씨의 딸은 내 딸일 수도 있다. 천광암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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