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학총장들의 시국선언

  • 입력 1997년 5월 13일 20시 33분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전현직 전국 대학총장 1백여명이 시국수습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대통령은 한보로부터 9백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해소되기 전에는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을 유보할 방침이라는 보도다. 4개월 이상 우리 공동체를 붕괴의 늪으로 밀어넣고 있는 난국을 추스를 해법이 분명한데도 그 해법을 비켜가려 한다는 것이다. 대학총장들이 한보사태 현철비리 대선자금의혹으로 끝없이 표류하는 국정에 대해 집단의사를 표명한 것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충정의 발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총장들은 총체적 난국을 수습하는 길은 진실에 입각한 국가영도력의 신뢰회복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그것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진실규명을 간곡하게 재촉한 것이다. 총장들은 동시에 한보사건과 각종 비리는 한점 의혹없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준엄한 사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현철비리가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 다음 남은 문제가 현안의 대선자금의혹이다. 이 의혹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매듭되지 않는 한 난국은 수습되지 않는다. 국정의 표류를 빨리 벗어나자는 것은 의혹을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가자는 뜻이 아니다. 대선자금이든 뭐든 진실을 감추고는 국가영도력은 회복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92년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을 미룬다는 보도다. 한보자금 9백억원 수수설이 제기된 마당에 입장을 표명해봐야 의미가 없으니 문제의 설이 규명되고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여권핵심의 현실인식은 턱없이 안이하다. 9백억원 수수설이 쉽게 규명되지 않는다면 지금같은 상황을 계속 끌고 가겠다는 뜻이 아닌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인가. 대통령에 관한 의혹이 제기되면 대통령이 스스로 앞장서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바른 순서다. 대통령이 먼저 대선자금 명세를 소상히 밝히면 일은 끝난다. 혹시 무슨 「음모」가 있다면 철저히 가려야 한다. 그러나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서까지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을 적당히 미루거나 생략한 채 일을 마무리짓겠다는 의도라면 난국수습의 길은 막힌다. 현철비리가 일단 사법적으로 처리되면 대통령은 대선자금의혹에 대해 국민앞에 직접, 그리고 신속히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매듭을 짓고난 뒤에야 국민적 합의와 결집 위에서 경제살리기 등 난국타개에 나설 수 있다. 대학총장들의 촉구가 아니더라도 진실규명 없이 매듭은 없다. 대통령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이를 회피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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