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의 눈]박찬호와 「불신의 벽」

  • 입력 1997년 5월 12일 20시 17분


국민의 의혹만 증폭시킨 채 끝난 한보청문회. 그 폐해가 프로야구에도 미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거 동양인이라고 깔보는 것 아닙니까』 『감독이 승리투수가 안되게 하려고 일부러 빼버린 게 확실해요』 『타자들은 고의로 헛스윙만 했죠. 백인투수가 나오니까 그때부터 치는 겁니다』 『중간계투로 나온 투수는 동점이 될 때까지는 대충대충 던지는 거죠 뭐』 지난 11일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의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는 KBS에는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선발 박찬호가 7이닝 3안타 무실점의 완벽에 가까운 공을 뿌렸고 다저스가 2대1로 이겼는데도 왜 승리투수가 안되느냐고 묻는 야구 초심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팬들은 인종차별의 뿌리깊은 전통을 가진 미국선수들이 박찬호의 승리를 시샘해서 집단으로 경기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저스란 팀이 원래 타격이 시원찮은데다 톱타자인 브렛 버틀러마저 부상으로 빠져 고전중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더구나 이날 경기는 근래 보기드문 투수전. 빌 러셀감독으로선 다저스가 7회 박찬호의 타석에서 2사 1,2루의 득점찬스를 잡자 그를 빼고 대타를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야구는 확률을 좇는 경기다. 그런 상황이라면 러셀감독이 아니라 국내 프로야구의 어떤 감독이라도 박찬호를 완투시키는 것보다는 대타를 낸 뒤 다저스가 자랑하는 막강 중간계투진을 투입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날 박찬호는 팬들의 아쉬움대로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1승을 추가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저스는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았고 박찬호 또한 이날의 역투로 메이저리그 진입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채우며 내셔널리그 방어율 공동 8위에 오르는 큰 수확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하일성<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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