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워싱턴]IAEA선거 안타까운 감정싸움

  • 입력 1997년 5월 9일 20시 08분


국제원자력기구(IAEA)사무총장 선거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한국정부와 정근모(鄭根謨)전과기처장관과의 대결은 지켜 보는이를 착잡케 한다. 국제기구 장(長)의 자리를 놓고 정부는 당선가능성이 없으니 나가지 말라고 말리고 당사자는 기어이 나가겠다고 하니 어느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나 싶다. 정씨는 8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왜 나서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길게 설명했다. 『국익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국제원자력계가 나와 같은 원자력 전문가를 밀고 있어서 승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골자다. 정씨는 정부의 태도에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언제는 출마하라고 해놓고 이제 와선 그만두라고 하고 선거를 해보기도 전에 승산이 없다고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 정부측의 설명은 물론 조금 다르다. 주미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당선 가능성도 그렇지만 정씨가 출마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남북관계, 특히 북핵 문제의 민감성을 들어 정씨가 사무총장이 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에 출마하지 않는 편이 한미공조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정씨에 대한 정부측의 불쾌감은 분노에 가깝다.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도 최근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원자력 전문가로서 정씨를 존경하나 북핵문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출신의 인사가 IAEA총장이 되는 것은 매우 미묘한 상황을 야기 시킬 수 있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씨 또한 『원자력대사를 하면서 단돈 1원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본 적이 없다』 『원자력행정과는 관계 없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외무부가 왜 나서느냐』는 등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총장 투표는 다음달 초로 예정돼 있다. IAEA의 사무총장선출은 지금까지 「합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와 개인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선채 표대결을 벌어야 할지 보는 사람이 안타깝기만 하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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