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지명관/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

  • 입력 1997년 5월 8일 20시 07분


45일간의 국회 한보특위 활동이 막을 내렸다. 가끔 텔레비전으로 한국정치의 축도라고 할 청문회 모습을 접하고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절망의 남북 정치현실 ▼ 거기에는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도,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도 없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이 사태를 슬퍼하는 사람도 없는 것같이 보였다. 그래서 청문회는 국민의 정치불신과 염증만을 가중시켰다. 어쩌면 그것은 해방 52년의 정치사 속에서 정치몰락 현상이 극에 달한 것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독일의 거대한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를 회상했다. 1945년 독일이 패망하자 그는 폭격을 피해 있던 어떤 농가 부엌에서 낡은 노트에다 「독일의 파국」을 쓰기 시작했다. 히틀러라는 악마에게 조국을 팔아넘긴 국민의 책임을 역사가로서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83세. 그는 책 머리에 이렇게 기록했다. 「제삼제국 12년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저 무서운 체험을 사람들은 언제 완전하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체험해 왔다고는 해도 누구 한사람 지금까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폐허가 되어버린 조국땅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비통한 심정으로 마이네케는 그렇게 쓰기 시작했을까. 우리는 지금 거리를 저렇게 자동차가 쉴새없이 누비고 지나가니까 아직 청문회에서 증인이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그것에 맞장구까지 치는 국회의원이 있어도 참아넘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마이네케처럼 해방 반세기가 넘는 역사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정치가 이꼴이 되었는가.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누구의 돈이기에 저렇게 마구 주고받았으며 아무도 그것을 탓하거나 가리려고 하지 않았단 말인가. 오랜 민주화 투쟁은 기껏해야 오늘과 같은 문민정치를 누리자는 것이었던가. 우리는 남쪽 한국만 바라보지 말고 한반도 전체를, 남북을 동시에 보는 사안(史眼)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북은 공산주의의 이상향을 만든다더니 겨우 기아에 허덕이는 노예사회라는 말인가. 권력자의 아들들이 문제되는 것을 보면 여기에 남북 역사의 동시대성(同時代性)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나마 그를 법 앞에 세울 수 있다는 데서 민주주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통일을 말하면서도 남북간의 이 적의(敵意)란 어떻게 된 것인가. ▼ 내일위한 진통 되기를 ▼ 사회적인 악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 마이네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많은 해석이 있겠지만 나는 최대의 기원으로 역시 냉전체제와 그로 말미암은 남북분단을 들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북은 「남반부 해방」이라는 구호로 「인민」을 굶주림으로 몰아넣고 말았고, 남은 그것과 싸워 생물적인 생존을 지킨다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정치를 일삼았다. 폭력으로 국민을 누를 수 있는 한 그 모순은 숨어 있을 수 있었다. 마치 북에서 지금도 그 폭력 때문에 김일성 「유훈통치」라는 기괴한 체제가 계속되는 것처럼. 오늘의 남한 사회에서는 그런 폭력은 쓸 수 없다. 그러니까 금권정치니 가신정치니 음모정치니 하는 것은 파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치문화의 변용을 보지 못했다는 데 오늘의 비극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새로이 권좌를 다투는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인식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오늘의 절망은 내일을 위하는 진통일 수도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해 본다.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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