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女性없이 미래 없다

  • 입력 1997년 4월 28일 20시 25분


며칠간 굶긴 암수 여러 마리의 쥐를 상자에 가두고,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지나가야만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했더니 찌릿찌릿한 전류 때문에 전선을 건너지 못하고 모두 굶어 죽었다고 한다. 다음에는 어미쥐를 새끼와 함께 상자에 넣었는데 어미쥐도 처음에는 몇 번을 되돌아오다가 마침내는 먹이를 물고 새끼에게 돌아왔다. 실험결과는 모성애의 힘이 자신의 생명까지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주요 자원 낭비해서야 ▼ 사자처럼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집단에서 사냥을 하고 새끼를 키우는 것은 암컷의 몫이다. 사람도 동물이니 이 원리는 비슷하다. 남자가 힘세다고 자랑해도 아이를 기르는 여자의 끈질김과 섬세함에는 따라가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여성의 발언권과 의사결정권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신문을 구독할 때 80%는 여성이 결정한다. 가정에서 쓰는 생필품 구입은 전부 여성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기업에서도 여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힘들게 됐다. 지금까지 남성만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해온 분야에도 이제는 여성들이 거의 다 진출해 있다. 조선소의 용접공 가운데도 여성이 많고 지게차 운전이나 버스 운전을 하는 여성들도 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분야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의 능력이 증명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대처여사와 같은 철의 여총리가 있는데도 「대처니까 그렇지」라든지 「여자도 아니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남녀평등 사상이 상대적으로 빨리 자리잡은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런 차별적 인식이 두드러진다. 아마도 우리나라만큼 여성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여성중 90%는 시집가서 집안일만 돌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설혹 어렵사리 우수한 여성인력을 선발해 놓아도 못배겨나게 배척하는 분위기 때문에 자꾸 밀려난다.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만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한 바퀴에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이는 실로 국가적 인적자원의 낭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여성의 구매력이 커지고 기업에서도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여성고객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고 여성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 취업지원 인프라 시급 ▼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남녀차별 관행을 모두 걷어내야 한다. 오늘날 기업의 어느 부분을 살펴보아도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국가 차원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탁아소나 유치원을 많이 지어 제공함으로써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켜 주어야 한다. 기업도 여성에게 취업문호를 활짝 열고 취업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비해 주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 모두가 여성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데 눈을 떠야 한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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