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67)

  • 입력 1997년 4월 28일 08시 14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20〉 처형의 장례식이 끝나자 마침내 아내는 죽은 언니가 살았던 집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녀를 설득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절망에 찬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었습니다. 아내 또한 슬픔에 찬 눈물을 흘리며 떠났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그 단란했던 결혼 생활은 불과 두 달만에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떠난 뒤 나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런 나날이 찾아왔습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자다가도 벌떡 깨어났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밤이면 아내의 그 보드라운 젖가슴이며 사타구니를 이제 그 동서 놈의 더러운 손이 주물러대고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살고 있는 그 집 앞에는 언제나 건장한 흑인노예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뒤 한 달쯤이나 지났을 때 나는 아내를 다시 한번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물건을 사러 시장에 나왔다가 우연히 나와 마주쳤던 것입니다. 아내는 그 사이에 수척하게 여위어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같이 아팠으므로 두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내 또한 나를 보자 내심으로 몹시 반가웠던지 말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처음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마주보며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내 손을 피하며 낮게 속삭였습니다. 『안돼요. 저는 이제 언니를 대신하여 형부에 대한 정절을 지켜야 해요』 그러한 그녀가 나는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내가 딱하기라도 한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당신이 그리워 미치겠어요. 하루를 두고도 몇 번씩이나 나는 당신한테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단 말이에요. 정말이지 형부가 제 몸을 만질 때마다 저는 구역질이 나요. 그럴 때면 제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저는 마음 속으로 당신을 떠올려요. 제 몸을 만지는 게 형부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나는 듣고 있기가 고통스러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왜 나와 함께 도망가지 않소?』 그러자 아내는 무엇에 쫓기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차례 급히 좌우를 둘러보고는 빠르게 속삭였습니다. 『오! 그렇지만 제가 도망을 간다면 그건 언니를 배반하는 것이 돼요. 오, 그리운 분! 알라께서 우리를 다시 맺어주실 때까지 제발 참고 기다리세요』 이렇게 말한 아내는 돌아서더니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나는 아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아예 살맛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증오스런 나라에서 탈출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것만이 나를 구제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항구에 혼자 서 있으려니까 뜻밖에도 수많은 상인을 태운 커다란 배 한 척이 항구에 들어왔습니다. 선장은 닻을 내리고 배를 해안에 맨 다음 상륙용 널빤지를 꺼내어 놓았습니다. 이어 선원들은 짐을 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옆에 서서 일일이 물건 이름을 적고 있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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