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안 어떻게 나왔나]「밥그릇」싸움때문 난산

  • 입력 1997년 4월 14일 20시 12분


지난 1월22일 공식 출범한 금개위는 단기개혁방안을 내기까지 전체회의만 15차례 가졌고 5개 분과별 회의도 주 2,3회씩 강행했다. 금개위가 세든 서울 종로1가 한효빌딩 14층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금개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금융이 현재의 후진적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시준비생이나 고3 수험생같은 마음가짐으로 일해왔다』고 말했다. 금개위가 개혁방안 마련에 몰두하는 동안 역풍도 있었다. 정열적으로 금개위 활동을 지원하던 李錫采(이석채)전 청와대경제수석이 한보사태와 관련, 경질되자 금개위도 힘이 다소 빠졌다. 또 姜慶植(강경식)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금개위의 단기개혁방안에 따라 곧바로 개혁에 착수하기보다는 중장기방안까지 나오면 정책에 반영할 것임을 몇차례 비춰 금개위의 의욕을 떨어뜨렸다. 단기개혁방안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위원들의 개혁 열기에도 차이가 많았다. 금융산업의 개혁은 곧 기존 금융기관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금융기관 대표들은 서로 자기영역의 기득권 보호에 급급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윤희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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